연중 제 17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7 25일 연중 제 17 주일
복음 묵상

지난 주에 파견되어 복음을 선포하고 돌아온 제자들을 한적한 곳에서 쉬게 하려하셨지만, 군중들이 너무 많아 쉴 틈조차 없었고, 오히려 목자 없는 양떼 같은
이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
. 이제 그들의 육체적 배고픔을 해결하시려 빵을 어디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물으신다. “여기 보리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다.”
안드레아는 예수님께 말씀드리면서도
저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냐고 되묻는다.

 

오늘 우리는 제1독서의 열왕기의 엘리사는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였지만
, 오늘 복음의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엘리사 예언자는 빵 한 개로 다섯 명을 먹인 셈이지만, 예수님은
빵 한 개로 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이셨다는 말이다
. , 복음서
저자는 오늘의 이야기로 예수님은 구약의 엘리사 예언자를 훨씬 능가하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 구약성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헤맬 때
, 하느님께서 그들을 먹이셨다고 한다. 그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구원은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면서
,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운
땅에 와서 살도록 하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 하느님이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셨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먹고 마시지 못할 때
, 하느님이 마련하신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으로 해방하지 못하는 것을 하느님께서
해방시키셨다는 구원의 체험이다
.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많은 사람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성찬 전례에서 사용하는 표현을
쓴다
. 이는 성찬이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살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인 빵 나눔에 참여하면서, 나눔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듣고
, 지금까지 인간이 생각하지 못한 축복과 풍요로움을 자기 주변에 일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는 사실에 집착하여, 예수님을
왕으로 삼아
, 먹거리를 해결하려는 군중을 두고 예수님은 혼자서 떠나셨다고 한다. 이는 예수님은 우리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는 분이 아니라 나눔을 가르치시고 그 실천하도록 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 우리는 내가 가진 것은 나 만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
내가 가진 물질도, 지식도, 자격증도 모두 내
자신을 가꾸고
, 내 자신을 풍요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의 정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세례 받을 때, 끊어버리겠다고 약속한 유혹이다. 유혹은 내 자신만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다
. 세례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나눔의 풍요로움을 살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나눔으로 말미암은 풍요로움을 살라고 권한다
. 나눔은 하느님의 일이다. 해서 나눔 그 자체로 기적이다. 기적은 자연법이 설명하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일 보다 하느님의 일이라 우리 눈에 놀랍게 보이는 것이다
. 따라서 모두가 주변의 자기 중심적인
세상에서
, 이웃의 어려움을 돕고, 나누고, 도우면서 행복한 사람은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풍요로움을 실천하는 사람이며, 하느님이
하시는 기적을 보여주는 사람이 된다
.

 

하느님은 성당 안에만 계시지 않으신다. 그분은
예수님께서 자기 스스로를 내어 주고 쏟는 사람 안에 살아 계시는 분이시다
. 이웃의 아픔에 참여하고,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 십자가를 지는 마음 안에 살아 계신다.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서 이웃이 하느님의 축복과 풍요로움을 맛보게 하는 데에 하느님은 사랑으로 살아 계신다
. 우리가
나누어서 이웃이 축복과 풍요로움을 맛보게 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이지만
, 하느님이 하시는 기적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