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연중 20주일
구멍이 아홉 개 있는 연탄을 구공탄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에게 구공탄을 잘 피우는 방법이 무엇이냐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구멍을 잘 맞춰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내 어린 시절의 경험으로는 늦은 봄에는 천천히 오래 타라고 일부러 연탄구멍을 안 맞추기도 한다. 그래서 구공탄을 잘 피우는 방법의 정답은 ‘불붙은 연탄이 아래로 가기만 하면 된다.’이다. 그래서 밑불이라 부른다. 어떤 불이라도 아래에 있어야 불이 잘 핀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신다. 성경에서 불은 하느님의 현존이며, 변화시키는 성령의 힘을 나타낸다. 엘리야가 가르멜 산에서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 그가 기도하자 주님의 불길이 번제물을 태웠다.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 (루카 3,16)이라 가르쳤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은 제자들의 마음을 채우고 내면을 정화시켜 사랑의 불을 타오르게 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불이시다. 그분은 사랑의 불이시고,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불사르신 열정적인 분이시다. 미움과 절망으로 얼어붙어 굳어버린 마음들을 녹이는 불이고, 질병과 고통과 눈물을 치유하는 불, 남자와 여자, 주인과 노예, 종교와 종파를 가르는 모든 차별을 태워 버리시는 불이시다.
예수님이 불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의 불에 옮겨 붙던지 아니면 멀리 도망가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과 열정에 압도되어 그 불이 내 게로 옮겨붙도록 결정한 이는 먼저 그 불로 자신 안의 불순물들이 타고 정화되는 고통의 시간을 겪어내야 한다. 물기 머금은 나무에 불이 붙으면 처음에 악취와 연기를 내뿜는 것처럼 불에 붙으려면 자신과 주변의 괴로운 정화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 기간을 견뎌내면, 잘 건조된 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우리 영혼도 성령의 불에 타오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같은 맥락에서 불로 정화된 영혼과, 멀찌감치 도망쳐 불구경만 한 사람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멀어질 수밖에 없기에 불에 붙은 이들과 불로부터 도망친 이들의 분열은 자명하다. 색깔만 제자인 사람들과 사랑의 불이 자신을 태워 사랑이 되어버린 제자 사이에는 분열과 갈등은 자명한 일이기에 그렇다. 사랑의 불이 되어버린 이는 더 이상 안일함과 편안함 그리고 편리함에 머물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화는 주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 내려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예레미야의 곤경을 이야기 한다.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점령당하리라고 진실을 선포한 탓에 물 없고 진흙만 있는 저수 동굴에 내려져 죽을 날만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불길에 휩싸여 하느님의 뜻을 전하다가 고통을 당하는 예언자의 전형이다. 이 모습은 곧 예수님께도 겪으실 고난의 모습이다. 이를 두고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주님을 따른다고 나서긴 했지만 내외적 관계 안에서 맞서고 갈라지고 짓눌리고 분열되다 보면 갈등이 생긴다. 선하신 주님을 따른다면서 서로 맞서고 갈라지는 걸 좋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래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 슬금슬금 뒤를 돌아보고 싶고, 두루두루 좋고 편안하게 사는 게 하느님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이런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격려 섞인 일침을 가한다. “죄인들의 그러한 적대 행위를 견디어 내신 분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낙심하여 지쳐 버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에 맞서 싸우면서 아직 피를 흘리며 죽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생각해 보면 주님의 불이 되어 타오른다는 것은 고난이든 영광이든 주님과 한 몸이 되어 헤쳐 나가겠다는 의지이다. 히브리서 저자의 권고대로, 십자가를 견디어 내신 분이 우리 앞에 계시니 우리는 “온갖 짐과 그토록 쉽게 달라붙는 죄를 벗어버리고,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참고: 히브 12,1)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위기를 동반하는 쉽지 않은 좁은 문의 여정이다. 주님의 진정한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깨고 버리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며,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도 대면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의 길인 동시에 부활의 길이기도 하다. 제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인간적 욕심으로 만들어 놓은 헛된 하느님 상을 깨뜨리고 하느님과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해가는 기쁨과 환희의 길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다.
밑불은 말 그대로 밑에 있는 불이다. 불이 밑에 있다면 나머지는 타게 되어있다. 사랑의 불이 타오르면 아니, 세상에 이 불을 지피려면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아래 내려가는 것을 겸손이라고 표현 하는 것은 사치다. 그저 예수님을 따르려는 이의 첫 번째 말씀, 자기를 버리면 사랑의 불을 지필 수 있다. 그것이 이 세상에 사랑의 불을 지르는 일이고, (자기를 버리고) 예수님이 받아야 할 세례를 받는 것이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분열을 일치로 평화를 가져다주는 일이다. (세상에 부활을 선포하는 일이다.) 주님의 불이 우리에게 옮겨붙어 정화되고, 그분의 제자의 삶처럼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우리였으면 한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