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진(바오로)신부님 연중 제 23 주일 강론

 

 

 9 4일 연중 제 23 주일 복음 묵상

오늘 복음에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은 우리를 거북하게 한다. 거기에 덧붙여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이나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도 모두 당신 제자의 자격이 없다는 말씀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당시에 이 말씀을 직접 들은 많은 군중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어리둥절하고 망연자실한 마음은 제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이다주님을 말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을 것이다. 오해를 불러들일 말씀으로 사람들을 실망 시키시는 주님께 따지고 싶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는 말씀을 단순히 양적인 측면에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모든 것을 버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재화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맹목적으로 모든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라는 말도 아니다그 말씀에는 온전한 투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온 삶을 그분께 투신하는 것이다그분의 제자는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사람이며모든 것의 기준이 그 분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삶이 결코 쉬워 보이지는 않지만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 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오늘 2 독서로 들은 사도 바오로의 말씀이다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셨다바오로의 삶은 다마스쿠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과의 만남으로 큰 전환을 맞이했지만사실 그 만남은 그가 박해하던 교회 공동체와의 만남을 통해 미리 준비되고 있었다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사도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겼다. (필리 3,7-9 참조그분께는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다바오로 사도가 그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게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사도를 위해 내어 주신 사랑의 화신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만나고 체험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예수님을 삶의 주님으로 모시는 것은 단순히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그분과의 만남과 사랑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이다그러나 넘어야 할 산은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고온갖 유혹들이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으며가끔씩 세상의 화려함 뒤에 계신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잊게 하기 때문이다.

 

주일마다 미사에 참여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지만, 그저 막연하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생각만 하고 있다면 주님을 따르는 사람인지 반성해 봐야 한다.

 

 

 

 

스스로의 삶이 법의 테두리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로교회의 전례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거나 교리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주님을 잘 알고제대로 따라가는 줄 착각하면 안 된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과 그분과의 친밀한 관계 형성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예수님의 공생활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들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이 매우 풍부했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그저 예수님의 보잘것없음에만 주목했다결국 예수님의 희생을 비웃었고 하느님의 자비를 애써 무시했다이에 대한 주님의 평가는 매우 냉정하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마태 15,8) 하느님에 관해서 아는 것과 하느님을 체험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바리사이들은 머리로는 하느님을 열심히 연구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다하느님에 관한 지식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했기에 주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무 가지가 햇볕을 향해 구부러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나무는 새잎을 돋게 하기 위해 햇볕()으로 향하기 때문에 가지가 구부러진다영혼이 없는 나무도 빛을 향해 나아가는데 어째서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빛이신 주님을 향해 서지 못하는가우리를 이끄시는 주님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도 주님께서 빛으로 다가오시어도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다른 곳을 향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감격하여 오직 그분만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을 살겠다고 약속한 사람들이다무엇보다 영생의 비밀을 알고 있기에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다짐한 사람들이다주님의 뜻을 알지만 자신이 가진 것이 많아서그 가진 것에 연연한다면 결코 주님을 향할 수 없기에 그분을 따를 수도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십자가는 단순히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을 마칠 수 있을 만한 충분한 경비가 있는지, 만명의 병사를 거느리고서 이만 명의 적과 싸워 이길 수 있을 만한 작전을 세우는 지혜로운 사람 이다.

 

십자가의 지혜는 물고기가 강을 거슬러 오르듯 자기만을 위한 편리함에서 거슬러 오르는 것이다.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고 지혜를 찾는 이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 십자가의 지혜다.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는 고통을 즐겨 찾는 자기 학대가 아니고, 하느님이 창조하신 원래의 모습이 되도록 나를 거슬러 올라가는 회개의 삶이다. 또한 십자가를 통해 부활로 이루어 지기에 구원의 삶이 된다. 해서 십자가의 삶은 우리가 살아야 할 참 지혜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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