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진(바오로)신부님 연중 제 29 주일 강론

 

10 16일 연중 제 29 주일 복음 묵상

"예수님께서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루카18,1) 이 말씀은 기도는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가끔 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예수님께서는 오늘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하라 하시며 과부와 재판관의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다.

 

복음에 나오는 재판관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2)는 사람이다옛 어른들도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에게 ‘하늘이 두렵지도 않으냐? 하며 꾸짖곤 했다이런 꾸짖음은 사람의 탈을 쓰고도 짐승처럼 행동하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또 이 재판관은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재판관인 셈이다예수님 설명대로 불의한 재판관이다.

   

그 고을에 과부가 있었는데 그는 줄곧 그 재판관에게 가서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하고 졸라 댄다. (3) 과부는 예수님 당시에 의지할 데 없는 가장 약한 이들이다인면수심에 안하무인 재판관에게 가장 약하고 의지할 데 없는 과부가 송사를 호소한다고 해서 그 재판관이 제대로 들어줄 리 없다. 하지만 그 과부가 줄기차게 졸라 대자 재판관은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4-5) 재판관이 과부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기로 작정한 것은 단 한 가지 이유끈질기게 찾아와 귀찮도록 졸라 댔기 때문이었다.

 

이 비유 말씀 끝의 예수님 말씀을 편의상 세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보면첫 부분은 예수님께서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새겨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부분이다

(6) , 불의한 재판관이 송사를 들어주기로 한 것은 자신이 의롭거나 그 과부가 안쓰럽고 애처롭기 때문이 아니라 끈질기게 찾아와 졸라 대는 것이 귀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부분은 이 불의한 재판관과 비교되는 하느님에 관한 부분인데,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7-8) 

   

 

이 둘째 부분은 불의한 재판관에 관한 부분과 극명하게 대비된다재판관에게 끈질기게 졸라 대는 이는 재판관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그에게 안중에도 없는 과부다그러나 하느님께 밤낮으로 부르짖는 이들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이들이다불의한 재판관이 단지 계속 졸라 대는 것이 귀찮아서 평소에 안중에도 없던 과부의 청을 들어준다면, 하느님의 자녀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다면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는 말씀이다루카 복음사가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이라면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이 비유를 통해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셋째 부분은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8)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께 밤낮으로 부르짖는 이들에게 바로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시는 것은 그들이 믿음을 가지고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믿음 없이 부르짖기만 한다면 밤낮으로 부르짖는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도와 달라고 하느님께 청을 드린다그런데 우리의 청원과 관련해 먼저 두 가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첫째 우리가 하느님께 청을 드릴 때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청을 드리는지 아니면 바른 해결책을 주시도록 청을 드리는지, 그 바른 해결책이라는 것이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바른 해결책인지 아니면 공정한 재판관이신 하느님의 바른 해결책 인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얼마나 간절하게 낙담하지 않고 끊임없이 청을 드리는지 아니면 적당히 청을 드려보고 안 된다고 쉽게 낙담하고 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성서학자들은 과부의 청을 들어준 불의한 재판관에 관한 이 비유 말씀을 루카 복음사가가 자신의 공동체를 위해 썼다고 풀이한다루카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쓸 당시에 교회는 박해를 비롯해 여러 가지로 고난을 겪고 있었다. 루카는 이 비유 말씀을 통해서 시련에 처한 신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밤낮으로 주님께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 확신하며 낙담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격려하고 믿음을 북돋우려 했다그렇다면 이 비유 말씀은 루카 복음사가의 공동체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씀이다. 우리가 현재 신앙에 대해 박해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세상의 온갖 유혹 속에 살아간다우리가 하느님께 선택된 백성이라고 해서 그 유혹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그 때문에 큰 신앙의 위기와 시련을 겪기도 한다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믿음을 가지고 시련을 올바로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는가 아니면 적당히 노력해 보고는 실망하고 낙담해 버리는가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물으신다.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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