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3일 부활 제 3 주일: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그들에게 말 할 수 없는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스승을 잃어버린 죄책감과 상실감으로 뿔뿔이 흩어져 버린다. 오늘 복음은 실망과 좌절을 가슴에 안고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의 모습을 전해준다.
많은 사람이 엠마오로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묻는다. 성서는
예루살렘에서 예 순 스타디온 떨어진 곳, 약 11km 떨어진 지점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정확한 장소는 모른다. 그러나 성서 말씀의 내용으로 보아 엠마오란 실망과 좌절을 안고 떠나가는 곳이라 해석된다. 제자들도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접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선 길, 그 길에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갔던 길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엠마오로 가는 길은 모든 것을 잃은 상실감에서 인생의 결론을 자신이 내리지 못하고 가는 사람의 길이라도 하고, 지난날 삶의 상념 속에 빠져 함께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길이라고도 한다.
오늘 복음 말씀을 보면, 두 제자가 실망과 좌절을 안고 여태껏 살아왔던 삶의 방식을 접고,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간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30리 길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는데 눈이 가려진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음에도 함께 가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그들의 대화를 듣던 예수님이 답답한 마음에 말씀하신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니 결국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성경의 말씀을 풀이해 주신다. 그것은 당신에 대하여 일어난 모든 일이 모세와 예언자의 글과 모든 성경에 이미 기록된 예언의 내용임을 확신시켜 주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길을 걸어가며 들은 성경 말씀에 그들의 마음이 타오르도록 감명을 받게 되지만 그럼에도 고정관념과 선입견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성경 말씀을 듣고, 예수님과 저녁 식사를 하는 중에 비로소 그들의 눈이 열리게 되어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게 되었다.
그들의 눈이 열리게 된 것은 그들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 즉, 성령께서 이루어 주신 것이다. 이것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말씀과 성찬례로) 서서히 열리면서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루카 24,32)
이렇게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감동되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들려주었던 성경 말씀과 그 안에 역사하신 성령으로 인한 것이었다. 성령께서는 말씀 속에서, 말씀과 함께, 말씀을 풀어주심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 그러나 우리가 그 성령을 온전히 자신의 삶 속에 모시지 못한다면 그냥 한순간의 타오름으로 끝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엠마오의 조촐한 식탁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해야 한다. 만일에 두 제자가 엠마오에 도착했을 때 길을 더 가려는 예수님을 청해 저녁을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에게 함께 머물러 주시기를 간곡히 청하였고, 함께 기도하고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눠 주실 때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다. 물론 그 순간 예수님은 그들의 눈 앞에서 사라지셨지만, 그들은 마음이 뛸 듯이 기뻤다. 오는 길에서 그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오르고 감동적이었던 이유를 그때 (성찬례) 비로소 깨달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언하지만, 성찬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살아있는 형상으로 현존하게 한다. 그래서 성찬례는 주님 부활의 가장 큰 표징이요,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고 우리와 함께 하심을 보여주는 가장 큰 표징이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죽으심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부활도 기념한다. 따라서 이제 부활하신 주님께서 당신 교회 공동체와 함께 머무르시는 것은 성체성사 안에서 이다.
엠마오 길의 제자들처럼 우리에게는 말씀과 성찬례 이 두 가지 모두가 필요하다. 성경 말씀들이 부활 사건에 비추어 풀이 되고, 성찬의 식사가 거행될 때,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타오를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 이 거룩한 일들은 이천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고귀한 몸인 성체는 오늘도 나눠지고 쪼개어져 우리 손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우리도 예수님께서 그 옛날 엠마오 길의 제자들에게 친히 빵을 떼어 주셨음과 같이 우리에게 나눠 주신다고 생각하고, 정성스러운 몸과 마음으로 영성체를 받아 모셔야 한다. 아무런 믿음 없이 남이 하는 것 나만 못하면 안 되니까 모시는 성체는 예수님의 몸이 아니라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한 조각의 밀떡일 뿐이다. 굳은 믿음으로, 확고한 믿음으로, 우리가 받아 모시는 성체는 예수님 자체이시고, 그분의 사랑임을 믿어야 나를 거룩한 영적 존재로 변화시키고 성장시켜줄 영약이 될 것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온 마음과 믿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이 천 년 전 엠마오 길의 제자들이 체험했던, 그 뜨거움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