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7일 부활 제 5 주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
오늘 복음의 내용은 마지막 고별사의 시작 부분으로서 예수께서는 파스카 사건을 통해 그분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실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제자들과 영원한 파스카를 지내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성부께 올라가셨다가 그들을 데리러 다시 돌아오신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성부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신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하시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한다. 예수님 하시는 말씀에서 길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리라는 것을 생각지 못하기 때문이다. 토마스가 이렇게 묻는다. 주님,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 (5절). 어떻게 …….’ 토마스는 어떻게에 묶여 있다. 토마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이시다. 어떻게는 토마스가 아니라 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예수님을 모른 채 ‘어떻게’를 찾아 나서는 것은 지도도 없이 모르는 길을 나서는 것과 같다. 토마스와 필립보는 자기 경험과 지식의 한계 안에서 예수님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자신을 개방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한계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 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라고 말씀하시며, 당신은 단지 사람들이 그 길에 이르는 것을 돕기 위한 안내판이 아니라 바로 그 길 자체라고 선언하신다. 그리고 당신만이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므로 쓸데없는 곳에서 헤매거나 근심하지 말고 당신을 믿고 따르라 말씀하신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잡혀 가시기 전, 매우 절박한 상황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제자들이 입으로는 목숨을 걸고 당신을 따르겠다고 장담하며 소리치지만, 당신께서 잡혀 가시고 나면 자기 들이 가야 할 길도 모르고 방황하게 될 사람들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이런 제자들을 두고 떠나가셔야 하기에 단호하게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 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요한 14,3)고 하신 것이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고, 이제 다 끝장이 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지만, 사실은 이제 당신으로 인하여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당신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가 서게 될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당신을 믿으라는 말씀이다. 나아가 다가올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갖고 세상의 일에 대해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금 너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믿음으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곧 길이기 대문이다. 세상은 온통 위선과 사기와 거짓이 만연하겠지만, 너희는 나를 믿어라, 내가 곧 진리이기 때문이며, 너희에게 죽음의 위협이 닥칠지라도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곧 생명이기 때문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마디가 머무름이다. 함께 머무는 것은 경험과 이해의 사전 지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말이 안 통하는 강아지나 고양이와는 함께 머물 수 있는 사람들이,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머물기가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 말이 통하고 뜻이 통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들, 서로 충분히 통할 수 있음에도 그 통할 수 있음이 통하지 못하게 하는 갈등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고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너무 믿고, 너무 의지해서,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을 우리 신앙 안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말이지 싶다. 예수님을 너무 믿고, 너무 의지해서 함께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이 꿈꾸는 예수님, 자신이 갈망하는 예수님이라는 우상을 부여잡고 있을 수 있기 때문 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말을 다 들어주신다는 믿음은 예수님께서 이런 죄인 안에서도 자유로이 당신의 뜻을 온전히 펼치실 수 있을 때 터져 나오는 감사와 감탄의 행위여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고작 우리의 편협한 뜻을 이루시려고 육화하시고 우리와 함께 머무신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로우실 수 있도록 예수님 앞에서 조용히 침묵하는 시간을 가져 봐야겠다.
유럽의 어느 수도원 경당에 새겨져 있는 글이다. “네 삶이 불행해도 나를 원망하지 마라. 너는 나를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네 주인으로 삼지 않았고, 나를 진리라고 하면서 내게 배우지 않았다. 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너는 나를 능력이라고 하면서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근심을 멈추고 오직 나를 바라보며 기도하라.”
세상에는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예수님을 의지하며 그의 말씀을 따라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 속하여 있지만,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기에 세상의 어떤 역경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부른다. 우리가 세상에 속해져 있지만, 하느님의 나라를 지향하고 있다면, 우리는 자랑스러운 Christian(그리스도 인) 일 것이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사도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