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 축일
미국 주교회의는 성체 신심의 활성화 혹은 부흥(Eucharistic Revival)을 선포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체 신심이 매우 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이들이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현존하심을 믿는다고 하지만,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성체를 단지 상징적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시카고 대교구도 각 지역별로 지역주교의 주례로 성체 현시 및 강복을 하고 있다. 가톨릭 신자로서 성체는 진실로 우리 삶의 원천이자 정점이 되어야 한다.
오늘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 축일을 맞아 우리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 보았으면 한다. ‘나는 미사 중에 사제가 빵을 축성하면 예수님의 몸으로 변화되고, 또 포도주와 물을 섞어 축성하면 예수님의 피로 변화된다고 믿는가?’ 여러분의 대답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교회헌장 제11항에 “그리스도인의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그 절정이 성체 성사다.” 라고정의하고 있다. 또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은총을 주실 뿐 아니라 실제로 그분 자신을 내어 주는 복된 성사이다. 왜냐하면 이 가장 거룩한 성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깨서 진실로 또 구체적으로 현존하시기 때문이며 이로써 이 성사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다”(토마스 머튼, 「생명의 빵」, 12)라는 표현처럼 성체성사 안에 우리 신앙이 완전하게 요약되고 집약돼 있어 우리가 성체성사 자체를 부정 하거나 의심하며 그 의미를 상징적인 것으로 축소한다는 것은 그리스도 신앙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오늘 제1독서는 모세가 요르단 강을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설교다. 오늘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신명기 8장 1절에 제1독서 주제가 함축돼 있다. “너희는 오늘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계명을 명심하여 실천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살 수 있고 번성할 것이다.”
‘너희는 오늘’ 이라는 말은 이 가르침이 모세 시대 이스라엘인만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들에게 또한 해당되는 말씀임을 보여 준다. 이어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광야에서 만나가 상징하는 하느님 섭리로, 주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던 시절, 광야 체험을 기억하도록 종살이에서 이끌어 주신 하느님을 잊지 말라고 권고한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께서 해 주신 일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 103,2) 하느님이 내 삶에서 일하신 것에 대한 기억에서 찬미가 흘러나온다. 구약에서 찬미는 감사라는 개념과 매우 비슷하다. 성체성사(eucharistia)는 그리스 어의 감사하는 말에서 유래한다. 성체를 모시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피조물에게 영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창조주를 향해 ‘감사’의 노래가 터져 나오게 하는 사람들이다.
성체성사는 초대 교회의 중심이었고(사도 2,42) 세상 끝 날까지 그렇게 될 것이다. 먼저 바오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성체성사의 필수적인 전제이자 결과인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친교에 대해 가르친다. 성체성사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동참하는’ 것, 곧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는 것, 나아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일치하며 살아가는 것이라 한다. 바오로는 또한 성체성사 전에 양심성찰을 하라고 권고하기도 한다. 빵의 형상 안에 실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을 강조하면서 그것을 불신하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결과가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9)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다른 복음서 저자들처럼 성체성사 제정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성체성사의 신비를 명시적으로 설명한다.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빵이며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라고 하신다. 그분이 주시는 빵은 물질적인 빵이 아니라 당신의 ‘살’이다. 성경 용어에서 살은 사람을 말한다. 즉, “말씀이 사람(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요한 1,14) 예수님의 살은 은유가 아니라 실제로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우리를 위해 주신 몸이다. 예수님은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라고 말씀하시는데 이것은 그분의 십자가를 암시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그분 몸을 주시고 그분 피를 쏟으셨기때문이다.
예수님은 또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고 하신다. 그분의 살, 참된 빵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면서 그분을 닮아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주시는 최상의 선물, 하느님과의 친교를 선물로 받는다. 바오로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한 고백은 요한이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고 한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싶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닮은 모습, 그분 자녀의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미사 때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하여 영적 양식이 된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의심치 않고 믿으면 우리의 삶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달라지는 은총에 이를 수 있다. “두 가지 허물 안에 분명 숨어 계시오나 우러러볼수록 전혀 알 길 없기에 내 마음은 오직 믿을 뿐 이오이다. (성 토마스의 성체찬미)
따라서 성체성사의 신비는 우리의 이성이나 상식으로는 절대 이해 할 수 없고 오직 믿음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만 가능하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봉헌하신 사랑도 모자라 그 은혜를 계속 나누어 주시기를 바라셨다. 또한 자신의 몸을 부수어 우리에게 영혼의 양식이 되시고자 자청하심으로 이루어진 은총의 선물이다. 오 사랑의 신비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