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 주일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이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집트 땅에서 탈출하여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는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느님께서 이집트 가정의 모든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를 멸하실 때 문설주에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가정은 그냥 지나가게 하셨고, 갈라진 홍해바다를 건넌 그들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했다. 우리가 들은 1독서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계시하신 십계명이다. 그러나 함께 하시며 생명을 주시고 돌보아 주시는 하느님을 잊고 종교가 의식화 되고 거대 조직으로 커지면서 성전은 하느님이 계신 곳이 아니라 장사꾼의 모임장소로 타락한다. 유대인의 성인들은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해야 한다. 이런 원칙 때문에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 대성전 일대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군중 들이 오갔는데, 대사제들과 유대교 고위층들은 환전상 및 부패한 상인들과 결탁해 순례객들의 돈을 뜯어 냈다.
가장 큰 문제는 성전에서 사용하는 화폐였다. 그 시대에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는 화폐에는 로마 황제 초상이 새겨져 있었기에 우상숭배의 문제로 성전 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성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별 화폐를 만들어서 참배를 하는 사람에게 환전을 해 주며 폭리를 취했다. 또한 대성전에서 바치는 예물도 문제였다. 유대교의 의식에서는 희생 제사가 중시되었으며, 희생제물은 흠이 없어야 했고 그 제물이 흠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정하는 사람은 대제사장들이었다. 이런 대제사장들과 상인들이 결탁하면서 순례자들이 직접 희생제물을 준비해 오더라도 "흠이 있다."고 트집을 잡아, 순례자는 어쩔 수 없이 성전에서 파는 희생제물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본 예수님은 분노하시며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시며 채찍을 만드시어 그들 모두를 쫓아내시며 정화하신다.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3,16.17) 라며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 된다고 밝힌다.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곧 성전인 것이다. 더욱이 성체성사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기에 우리 스스로는 거룩한 성전이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성전이라 하신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2,19-21) 예수님께서 성전을 당신 몸을 두고 말씀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에겐 성전 정화의 이야기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암시하는 것으로 알아듣는다.
오늘 제 2 독서로 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바오로의 선포는 참으로 심오하다.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더 지혜롭고 하느님의 약함이 사람보다 더 강합니다.”(고린1서 1,25) 즉,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세상의 눈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지만, 그것은 하느님의 지혜로움을 드러내는 역설적인 행위였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 어리석어 보이는 십자가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은 화려하고 놀랄만한 일을 통해 우리를 구원한 것이 아니라 지혜롭고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가장 약하고 보잘것없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니, 어리석다고 떠들어대던 하느님의 어리석음이 지혜를 내세우고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의 지혜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는 말씀이 얼마나 심오한가?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사순 시기는 정화의 시기이자 은혜로운 회개의 때라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라면 우리 스스로를 정화해야 한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자.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장사꾼의 마음부터 정화해야 한다. 밑지고 판다는 장사꾼의 말이 늘 거짓이듯, 신앙의 모든 행위가 내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장사꾼의 마음이다.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하느님의 집'인 성전이다.
그분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하느님 백성들의 몸도 성전이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신앙생활은 바로 이를 실천하는 것이다. 하느님만 사랑하는 것도 또 이웃만 사랑하는 것도 올바를 신앙이 아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 우리가 사순 시기 동안 해야 할 정화이고 회개지 싶다. 우리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성전이라면 오늘 우리를 향해 채찍을 드시는 예수님의 열정을 만나야 할 것 같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