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성령강림 대축일 Fr. 김두진(바오로) 강론

 

5 19일 성령강림 대 축일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 저질러진 죄는 용서가 가능할까? 죄가 용서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자신이 잘못한 것을 용서받는 일도 어렵지만,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는 일 또한 얼마나 어려운가? 그래서 용서는 성령의 은총이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그리고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것도 은총이다. 용서받는 것도 기쁘지만 용서하는 것은 더욱 기쁜 일이라는 것을 체험할 수 있으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숨을 불어넣으며 말씀 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래도 남아 있을 것이다.” (20,22-23). 하느님께서 세상 창조 때에 아담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주신 것처럼 (창세 2,7)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새 생명의 숨, 곧 성령을 불어넣어 주신다. 성령은 제자들 뿐 아니라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탄생시킨 생명의 힘이시다. (사도행전 2장 참조) 그래서 교회의 모든 성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집행이 된다. 미사 거행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 변화의 순간에 사제는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이렇게 성령은 교회 탄생의 생명이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 중심이 되신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른다고 하는 신자나 또 성령이 함께 하지 않는 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신자, 영으로 죽은 교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신자는 성령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성령이 우리의 삶에 찾아와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또 그렇게 찾아온 성령이 우리 삶을 통해서 어떤 결과를 맺게 하시는지는 알아듣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도록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과학이나 문명의 이기가 사람들을 또 다시 높은 바벨탑을 쌓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능력으로 하느님의 힘을 볼 수 없는 이유는 하느님의 능력은 하느님의 일에서 드러나고, 사람의 능력은 사람의 일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람이 눈부신 과학의 발전과 빛나는 바벨탑을 쌓아 올린 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다.

 

 

성령께서 우리게 오신다 함은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필요한 것이기에 간절히 원해서 얻어진 선물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하느님께 청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나 건강, 세상의 높은 권력이나 사업의 성공,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바라는 것들은 성령의 선물이 아니다. 하느님의 선물인 은총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자신의 이익으로 청하는 것과는 달리 교회공동체가 말하는 하느님의 힘, 성령의 은총은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두려워함의 일곱 가지 은총이다. 이런 은총들을 통하여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삶의 열매는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라고 바오로 사도는 말한다. 성령의 은총은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한 것들이며 이 은총으로 맺는 열매들은 예수님께서 주시고 간 충만한 기쁨을 살게 한다.

성령을 받으면 외국어를 자기 나라 말처럼 능숙하게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오늘 1독서에서 사도들이 말씀을 전할 때 서로 다른 언어로 알아들었다는 것은 사도들의 언어가 AI의 기술처럼 자동으로 번역되어 자기의 언어로 알아들었다는 뜻이 아니다. 세상에 오래 함께 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래된 친구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를 포함해 소리는 듣되, 뜻은 듣지 못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해서 오해하고 슬퍼하고 아파하는 우리들에게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로 우리게 다가 와 마음을 열게 하심으로 소리만 듣는 것이 아니라 소리 뒤에 숨겨진 뜻까지 들을 줄 아는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 안에 일하셨던 하느님의 숨결이시다. 하느님 안에 모두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시는 숨결이시다. 차별 만들기를 좋아하고 그 안에 안주하면서 우월감에 빠져 살고 싶은 우리를 그런 욕구에서 해방시켜, 하느님의 자녀로 함께 살게 하시는 하느님의 숨결이시다. 오늘 복음은 그것은 용서로 시작된다고 말한다. 성령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숨결이시다. 이 숨결은 우리의 갈라놓는 죄를 용서하여 자비하신 아버지의 자녀 되게 하신다. “당신 숨을 보내시어, 온 누리의 얼굴을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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