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연중 제 11 주일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때에 우리는 곧잘 ‘기가 막힌다.’혹은 ‘기가 찬다.’는 말을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기가 막히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우리 성당 신자들 중에 텃밭을 가꾸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언젠가 ‘봄날에 혹은 여름에 이렇게 일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대답은 하나 같이 힘들지 않고 재미있는데 그것도 아주 재미있다고 한다. 뭐가 재미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땡볕에 쪼그리고 앉아 풀 뽑고 물 주고 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 농사가 재미있는 것은 나중에 신선한 채소를 먹는 것도 있겠지만, 기가 막히는 일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열무, 쑥갓, 상추 씨앗은 입으로 훅 불면 날아가 버릴 정도로 작기 때문에 다룰 때는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씨앗은 흙을 덮어줄 때 너무 많이 덮으면 발아가 늦기 때문에 빗자루로 조심조심 쓸어가며 흙을 살짝 덮어준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 이주일, 한 달이 지나가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시커멓고 죽은 듯한 텃밭이 푸른빛으로 변하고 조그만 싹이 올라오고 그 줄기가 자라고 잎사귀가 나오는 것을 보면 기가 찬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텃밭 전체가 풍성한 식탁으로 변화되는 것은 기가 막힐 일이다. 상추나 쑥갓은 솎아먹어도 또 나오고 또 솎아 먹어도 또 나오니 어찌 신나지 않을까? 얼마나 기가 막힐까?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된다고 오늘 복음은 말한다. 작은 믿음도 정성으로 다가가면 큰 믿음이 된다는 뜻이다. 겨자 나무도 뿌리가 션찮으면 자라날 수 없는 것처럼 이 정성은 보이지 않는 부분을 잘할 때 빛을 발한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 ‘보이는 부분’을 좌우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며 사는 우리 신앙인의 삶은 농부의 삶과 같다. 농부의 삶은 믿음과 인내의 삶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농부는 조그마한 낱알 하나가 나중에 수십 수백 배의 열매를 맺으리라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아주 보잘것없는 작은 씨앗에 불과하지만 가을이 오면 누렇게 익은 벼에 낟알이 맺히게 된다. 농부는 잘 익은 벼를 수확함으로써 그 동안의 노고를 깨끗이 잊고 기쁨에 가득 찬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는 처음엔 보잘것없이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커다란 기쁨과 행복이 주어질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필요하다.
농부는 인내의 삶을 살아간다. 모내기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프고 돈이 필요하니 당장 수확하겠다고 말하는 농부는 없다. 농부는 추수하기 위해서 논바닥을 갈라놓는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견뎌야 하고 논바닥을 휩쓸어갈 듯이 퍼붓는 빗줄기를 견뎌내며 벼가 잘 익는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 결국 벼가 누렇게 익어야 추수하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느님 나라 역시 인내로써 그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가 차면 하느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실 것이다.
‘하느님 나라’ 하면 보통 세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죽어서 갈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체험하는 나라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지 못한다면 죽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먼 곳에 있지 않다.
2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보이는 것”과 “믿음”을 대비시켜 설명하는데, 그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확신을 더 강조한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1코린 7,31 참조).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고통과 시련이 늘 뒤따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바오로 사도는 “이 몸을 떠나 주님 곁에 사는 것이 낫다.”고 고백한다. 이처럼 하느님 나라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다.
하느님 나라가 자라나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언제나 확신에 차 있습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라고 한다.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것이라 믿는다면 우리는 항상 확신에 찬 신앙생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상추 씨 심어놓고 상추가 언제 자라는지 모르는 채 상추를 따 먹는 우리처럼 하느님의 나라는 이렇게 우리게 기가 막힌 놀라움과 풍성함을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