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 축일
"진지 잡수셨어요?" "그래, 너 밥 먹었니?" 어린 시절 동네에서 어른들께 드리는 인사말과 인사의 응답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을 시절 밥 굶는 것을 예사로 지내던 시절의 인사말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굶기를 밥 먹듯이 해서 이런 이렇게 인사를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식사는 식구(食口)들이 하는 행사다. 즉 먹는 것은 함께 하는 가족들이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예전에는 동네 어르신들은 우리 모두의 어르신이었고, 어르신들도 동네 아이들은 모두 당신 자녀들처럼 생각했기에 그런 인사말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먹는 것을 염려하던 시절이었지만, 먹어야 산다는 원초적인 의미보다 한 솥 밥을 먹는 것은 친교라는 생각이 들자 "진지 잡수셨어요?"하는 물음은 친교와 사랑이 넘치는 인사말이었지 싶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의 신비는 “계약”을 통해 드러나는 사랑의 신비다. 오늘 말씀의 주제 또한 “계약”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공통 으로 강조되는 단어도 “계약”이며 계약에서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죄의 용서’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다!"
제1독서는 시나이에서 맺은 옛 계약으로, 모세를 통하여 맺어지는 하느님과 당신 백성의 계약이다. 복음은 최후만찬에서 행하신 성체성사의 설정을 통하여 맺어지는“새 계약”의 장면이다. 그리고 제2독서는 새 계약의 중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죄를 속량하시고 상속재산을 받게 해 주셨음을 되새기게 한다. 제1독서의 시나이 계약에서, 모세는 희생된 짐승의 피를 절반을 제단에 뿌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백성에게 읽어준다. 그러자 백성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탈출 24,7) 하고 응답한다. 모세는 나머지 피를 백성에게 뿌리며 말한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 24,8)
여기에는 계약을 구성하는 요소가 세 가지로 제시되고 있는데, 첫째는 하느님의 말씀이요, 둘째는 백성들의 응답이며, 셋째는 피를 뿌리는 예식이다. 곧 계약은 용서를 위한 피의 의식을 통해서 제정되지만, 동시에 하느님 말씀의 받아들임을 통해서 제정된다. 이처럼, 계약에 있어서 말씀과 의식은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해방절 (무교절 첫 날, 곧 파스카 양을 잡는 날)에 하시는 일로 시작한다. 곧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당신의 몸과 피를 희생물로 내 놓으심으로 옛 계약 안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가 드러나게 된다. 곧 구원의 사랑이 선포되고, 새로운 생명이 시작된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르 14,24) ‘새 계약’은 구약의 ‘옛 계약’과는 다르다. 모세의 계약은 짐승의 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구약의 백성들은 번제물과 친교 제물로 암송아지, 염소와 황소를 희생 제물로 바쳐야 했다. 신약의 계약은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짐으로 더 이상 짐승의 피를 바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계약의 중개자가 되시고 속량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최후 만찬 중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죄 사함”의 용서가 “새 계약”이다. 더 나아가, ‘죄를 사하여’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는 것’바로 ‘새 계약’이다. 또한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신 피’, 이것이 바로 성체 성혈의 신비에서 드러나는 주님의 크신 사랑이다.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는 단 한 번 희생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은총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을 봉헌하는 미사에 참여할 때마다 속죄와 친교의 제물을 바치게 된다.
짐승의 피로는 완전한 속죄와 친교의 제물을 바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바치는 미사성제로 완전한 계약이 지속되며 우리는 그것으로 구원의 은총을 받는다. “영원한 영을 통하여 흠 없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신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죽음의 행실에서” 벗어나 깨끗하게 한다. (히브리 9,14)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은 우리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하느님께 봉헌되고 있다.
식구는 식사를 함께 함으로 친교를 나누고 더욱 깊은 친밀감과 소속감을 쌓아간다. 식사를 함으로서 친밀감을 갖게 된다. 초대교회가 주님의 말씀으로 다져지고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음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루어 낸 성찬례의 결과다. 주님과 하나 되는 이 친교와 말씀의 선포는 우리가 아직까지 행하고 있는 성찬례의 참 의미이다. 오늘 사랑의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신다. "너희는 받아먹어라, 너희는 받아 마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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