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연중 제 23 주일
모든 대화의 기본은 듣는 것이라고 한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듣는 것은 참 어렵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그 말 뒤에 있는 마음까지 듣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듣는 것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복잡한 사람들이기 십상이다. 또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이웃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자기가 아는 것이 많아서, 혹은 자기의 신분서열이 높아서,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며 자기도취에 빠질 수 있다. 자기 도취는 이웃의 말이 들리지 않는 장애 현상이다. 그런 사람은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즐겨 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는 생각하지도 못한다. 자기 안에 있는 한이나 미움을 토로하는 데에 급급한 사람도 이웃의 말을 듣지 못하는 장애인이다. 귀를 기울여 그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태도가 없는 이상, 상대방의 말은 별 의미 없이 지나가는 소리로 끝나고 만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더 마음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유아 세례 예식 중에 신앙의 귀, 마음의 귀를 열어 주는 ‘열려라(에파타)’ 예식이 있는데, 이때 사제는 엄지손가락으로 세례 받는 아기의 귀와 입을 만지며 “주 예수님,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셨으니, 이 아기도 오래지 아니하여, 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입으로 신앙을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하고 기도한다. 세례성사를 통하여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아버지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거나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신앙의 귀머거리나 말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놓고, 들은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삶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는 것이 된다.
오늘 복음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 하나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왔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두 귀에 당신 손가락을 넣었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쉰 다음 ‘에파타’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 시대 청각 장애인을 치유할 때, 사람들이 흔히 하던 동작이라고 한다. 기름, 술 혹은 침과 같은 액체는 치유의 효력을 지녔다고 믿던 시대였다. 우리도 옛날에는 벌레에 물려 가려운 곳이 있으면 침을 바르면 난다고 믿던 시절이 있었다. 손가락을 환부에 대는 것은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기를 넣는 행위라 할 수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는 것은 하늘에서 기의 힘이 내려오도록 하는 동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오늘 복음이 그 시대 치유하는 사람들과 같은 행위를 하시며 예수님께서 그 장애인을 고치셨다고 전하는데, 이는 우리가 들은 제 1독서의 이사야 예언서(35,5)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람들이 한 말을 전한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구나.’ 즉, 예수님은 예언서가 예고한 구원적인 일을 행하시는 분이라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귀먹고 말을 더듬는 사람의 사건은 과거에 있었던 사건만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현상이다. 귀먹었다는 것은 들을 귀가 없다는 뜻이다. 귀가 있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귀먹은 사람이다. 입이 있어도 하느님에 대해 한마디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말 더듬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빵의 기적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도 마음이 완고해서 알아듣지 못했고, 호숫가에서 자기들을 구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비명을 지르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바로 귀먹고 말 더듬는 이의 모습이다. 그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무엇을 물었는데 대답하지 않는 것을 함구라 하고, 묻지도 않았는데도 말을 다하는 것은 수다라 한다. 함구하면 세상과 끊어지고, 말이 많으면 자신을 잃고 만다. 바른 처신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어렵다. 말한 바를 실천하는 사람, 힘 있는 사람이고 가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잡초로 가득 찬 정원과 같다. 이처럼 듣고 말하는 이 둘 사이에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 말의 신비를 터득한 사람이라 하겠다.
지난 주일에도 말 좀 들어라 하시며 듣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듣지 못하는 우리에게 에파타! (열려라!)하고 우리의 귀를 열어 주신다. 들으라고, 기쁨의 말씀을 들은 대로 외치고 그 기쁨을 살라고 우리를 향해 외치신다. "에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