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연중 제 18 주일
당신은 빵을 사고 싶을 때 동전을 지불한다. 가구를 사고 싶을 때 은전을 지불한다. 그리고 토지를 사고 싶을 때 금전을 지불한다. 그러나 사랑을 사고 싶을 때 당신은 당신 자신을 지불해야 한다. 사랑의 값은 당신이다.”예수님 때문에 영원한 생명의 빵을 먹은, 영원한 생명의 사랑을 체험한 ‘아오스딩’성인의 말씀이다. 영원한 생명의 빵을 거저 얻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의 값으로 바쳐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생명의 빵이신 주님께서 먼저 당신 삶의 표양으로 보이셨기 때문이다.
지난주일 복음을 통해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두 마리의 생선으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기적의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의 복음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계속되는 말씀이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다. 그리고 이미 어두워졌을 때 예수님께서는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다. 놀란 제자들이 그분을 배에 모시려고 하자 이미 배는 목적지 즉 건너편에 닿아 있었다고 전한다. 즉, 제자들은 이미 호수에서 놀랍고 신비스러운 사건을 접했다는 말이다. “표징을 본다”는 표현은 예수님의 행위(기적)에서 신적 의미를 파악한다는 뜻이다.
물위를 걸어오신 것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님께 묻는다. “언제 이쪽으로 오셨습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신다. 즉 표징을 보았기 때문에 (신적 의미를 파악해서가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빵의 기적이 아직 표징의 의미로 다가온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예수님께 다가서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시는 주님이시기에 따라야 한다. 이는 오늘 제2독서 말씀처럼 썩어 없어질 양식을 위해 사람을 속이고 욕망으로 멸망해 가는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에페 4,22),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생명의 빵인 예수님과 인격적인 일치를 통해 영과 마음이 새로워져 진리의 의로움과 거룩함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새 인간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페 4,23-24)
오늘 복음의 주제는 “먹는 것”과 “생명을 얻는 것”이 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요한복음에서는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지는 것으로 약속된 “양식”이다. 이 양식은 지속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양식으로 이른바 “길이 남아있을 양식”이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기 위한 양식”이며 “사람의 아들이 주게 될 양식”이다.
오늘의 말씀은 듣고 읽은 대로, 이 양식은 구원의 선물로서 먹고 마시도록 제공될 예수님의 “살과 피” 곧 성체성사적 선물인 “음식과 음료”를 말한다. 그렇지만 많은 이들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는데 힘쓰지 말고 영원한 양식을 얻는데 힘써야 한다는 말씀을 여전히 알아듣지 못한다.
누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는 자들일까? ‘고기 가마 곁에 앉아서 배불리 먹던 우리를 어찌하여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굶겨 죽이려고 하느냐? 하고 하느님을 원망하는 것,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고 좀 더 쉽고 편하게 뭔가를 얻으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힘쓰는 사람들일 것이다.
분명 영원히 배고프지 않을 빵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도 생명의 빵이 되어 사는 것이다. 생명의 빵으로 살기 위해서는 겸손의 자세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영원한 생명의 빵을 우리에게 먹이시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낮추실 대로 다 낮추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으로 우리를 살리셨다. 이것이 생명의 빵인 성체의 신비이며 가르침이다. 그리고 이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삶이야 말로 지상에서 썩어 없어질 양식이 아니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양식, 그 생명을 누리는 길이다. 다시금 우리는 세상의 음식이 아닌 영원한 생명의 음식을 먹고 나누어야 할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않는 우리였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