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8일 연중 제 20 주일
지난 3주 동안 또 앞으로 3주 동안 총 6주에 걸쳐 복음을 통해 생명의 빵에 대해 듣게 된다. 그만큼 성찬례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오늘의 복음 말씀 (요한 6,51-58)은 예수님께서 성체가 무엇인지에 대해 밝히신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6,51)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는 그래서 생명이다.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먹으라고 주고 자기 피를 마시라고 한단 말인가?”(6,52-54) 그 말씀을 들은 유다인들은 심하게 반발한다. 유대인들은 성찬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은 그리스도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닌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살이라는 말은 인간관계를 의미하기도 한다. ‘내 살’이라고 말하면 ‘내 형제’를 의미한다. 우리도 ‘피붙이 혹은 살’이라고 하지 않는가? 내 살은 나와 관계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오늘 복음이 예수님의 살을 먹는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의 인간관계를 우리의 삶 안에 살려낸다는 뜻이다.
“누구든지 어떤 피든 피를 먹으면 나는 그 피를 먹은 자에게 내 얼굴을 돌려 그를 자기 백성에게서 잘라 내겠다. 생물의 생명이 그 피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자신을 위하여 속죄예식을 거행할 때에 그것을 제단 위에서 쓰라고 너희에게 주었다. 피가 그 생명으로 속죄하기 때문이다.” (레위 17,11). 그래서 유다인들은 수군거린다. 피를 마시는 것 자체가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는 위에서 보듯이 생명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말은 그분의 생명을 우리 안에 살아 있게 한다는 뜻이다.
결국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말은 예수님이 사람들과 가지셨던 관계와 예수님이 사셨던 생명을 우리의 것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병자를 만나면 고쳐 주시고, 죄인으로 낙인 찍힌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하느님은 용서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소외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 마음의 부담을 없애 주셨다. 예수님이 사신 생명은 자기 스스로를 높이고 보존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다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은 기회만 있으면 자기 한 사람 잘 되는 길을 찾는다. 자기가 경쟁에서 이기고, 자기 한 사람 더 잘 살기 위해서는 이웃이 겪는 피해는 상관하지 않는다. 내 편에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다는 편에 대한 모략과 중상을 주저하지 않는 정치 현실이 인간의 그런 불행한 면모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여 준다.
예수님은 다른 생명을 섬기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이 최후 만찬에서 ‘내어주는 몸이다 받아먹어라’, ‘쏟는 피다 받아 마셔라’라고 하신 말씀은 당신의 삶을 요약하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성찬을 거행하는 공동체도 그 사실을 알아들었고, 그 말씀은 오늘의 미사에까지 보존되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 예수님의 살이라는 빵을 먹고 예수님의 피라는 포도주를 마시는 사람은 예수님이 보여 주신 삶을 살아야 하고, 그것은 곧 하느님 아버지의 생명을 사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만찬에서 빵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또 포도주가 담긴 잔을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당신의 몸이고 우리를 위한 당신의 피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감사로우면, 그것을 모든 사람을 위해 주어진 은혜로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모든 사람을 위한 축복이 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성체성사가 지닌 의미다.
미사 안에서 축성되어진 빵을 예수님의 몸으로, 포도주를 예수님의 피로의 거룩한 변화를 믿고 그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스스로를 내어 주고 쏟으신 예수님의 인간관계와 생명을 우리의 것으로 하겠다는 다짐이다. 성찬에 참여하면서 우리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지 않으면, 우리가 그것을 먹고 마시는 이유가 없어진다. 예수님의 살과 피로 말미암아 성찬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변화’는 그것을 받아 모시는 우리들도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하고 또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