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19일 연중 제 2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 19일 연중 제 2 주일

성모님은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이를 주인이나 일꾼들에게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알린다. “포도주가 없구나.”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 사이에포도주가 없다는 것은 옛 계약이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곧 결핍을 나타내는 숫자인여섯 개의 항아리는 사랑이 결핍되어 있음을 나타내고, 더욱이 그 항아리들은 더 이상 내 줄 것이 없는 빈 항아리들이었다. 그래서일곱 번 째의 항아리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말씀에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하며 차가운 대답으로 응답 하신다. 믿음과 신뢰를 담은 어머니의 요청에 칼로 무를 자르듯 정확히 선을 긋는 예수님의 태도는, 왠지 어머니와 거리를 두는 듯하다. 요한복음서의 저자는 예수님과 성모님을 모자의 관계보다 성모님이 진정한 믿는 여인이며 예수님의 제자였음을 부각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덧붙이시는데, ‘예수님의 때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때옆구리에서 피와 물을 쏟을 때를 말한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성모님께서는 요청하는 자세에서 순종하는 자세로 태도를 바꾸신다. 거절은 당했지만, 무엇을 하든 어떻게 하든 모든 것을 그가 시키는 대로 따르라고 하신다.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아닌 예수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신다. 이처럼 성모님께서는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잉태하고 계셨듯, 믿음 안에서 이미 예수님께 순명 하신다. 제자들은 기적을 보고서 믿었지만, 마리아는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예수님의 권능을 믿으셨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신 예수님과 이에 대한 강한 믿음을 드러내신 어머니는 그 존재 자체로 하느님의 영광이 되시고, 그 결과로 위기와 혼란이 파급되던 잔치에새 포도주라는 선물을 전달하신다.

호세아와 예레미야 예언자 시대를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남편으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남편이신 하느님께 충실치 않았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선언하지만, 오늘 1 독서의 이사야서 예언서는 소박맞은 여인, 버림받은 여인이 되었던 예루살렘이 다시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여인, 혼인한 여인이 되리라고 선포한다.

 

  

혼인 잔치는 그렇게 하느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아껴 주시는 구원의 때를 암시한다. 그래서 복음서도 예수님을 밤중에 신부를 찾아오시는 신랑으로(마태 25,1-13 참조),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로 비유한다(마태 22,1-1참조).

이제 예수님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포도주로 혼인잔치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되고, 인류는 이 사건을표징으로 진정한 새 신랑(예수 그리스도)의 포도주()로 맺어질 새 계약의 시대를 시작하게 된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 혼인잔치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이 말과 함께 표징으로 바뀐다. 특별히정결례에 쓰는 물독은 표징의 의미를 아주 잘 드러낸다. 이스라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정결례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대표적인 조상들의 관습이다. 이 물독에 새롭게 물을 채운다는 것은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것이고, 이 시대는 종말을 향한, 구원의 완성을 향한 시간이다. 이 시간은 물을 채우도록 하는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다. 예수님은 좋은 포도주 같은 기쁨을 선사하는 분으로, 구원의 기쁨을 미리 맛보게 하는 분으로 드러나신다.

 

표징은 기존의 것과는 다름을 알리는 신호, 표시, 징조를 말한다.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된 공생활은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사건을표징으로 하여 이제그분의 때에 돌입했음을 선포한다. 특별히 오늘 복음은 카나에서의 사건을기적이라고 하지 않고표징이라고 규정하는 데, 카나의 사건은 그저 놀랍고 기이한 행적에 그치는 이벤트가 아니라, 뭔가 이전과는 구별되는 다른 시간, 다른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명백한 징조이며 신호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도 성모님처럼, 나 자신을 위해서보다 나보다 더 곤궁에 처해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다. 흥겨운 혼인잔치를 위해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일꾼들처럼, 좋은 세상을 위해 숨어서 묵묵히 일 하시는 많은 의인들을 기억하자. 그들 덕분에 혼인잔치는 기쁨의 잔치가 되고, 그들 덕분에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사람 사는 세상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모님께서 말씀하시듯, 무엇이든 그분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는 신앙인이 되자. 그럴 때 우리는 지난 주일에 들었던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딸(아들)”이라 시던 주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 때문에 기뻐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뵙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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