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6일 연중 제 3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1 26일 연중 제 3 주일

지난 20, 월요일은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미국의 쇠퇴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멕시코와 접한 남부 국경에 대한 국가 비상사태 선포 등 광범위한 여러 행정 조치를 통해 신속히 대처하겠다고 약속 했다. 미국의 새로운 황금기! 귀에는 좋게 들리나 뭔가 불안한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한국의 상황은 양극화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폭력, 힘 그리고 권력……. 그러나 양극화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작 기득권을 양보하거나 포기하며 그 간극을 메우려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과 힘 없는 사람들은 그 무력함에 절망하며 빈곤의 대물림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양극화는 두 세상, 사람이 사람 인 세상과 사람이 아닌 세상이 있음을 보여 준다.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음 직한 적자생존과 무한 경쟁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낙오자를 양산 하고, 그도 모자라 그들을 보잘것없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으로 철저하게 짓밟아 버린다. 겉보기는 인류 공동체라고 하지만 이쯤 되면 동물의 왕국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루카 1,18-19)”하는 그 일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이루어 졌음을 밝히신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라고 하신다. 듣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이루어질 수 없다.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들어 그 뜻을 따르는 순명을 말한다.

우리가 복음 말씀대로 순명을 하는데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없을 것이다. 성서는 반드시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말씀이다. 바로 오늘(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성서의 말씀을 이루어지게 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오늘 나에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룰 때 그 말씀이 나에겐 기쁜 소식이 되고 그 복음이 모든 억압에서 나를 해방시키는 일이라는 것과 주님의 은혜로운 해(루카 4,19)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예수님이 "늘 하시던 대로"라고 하신 것처럼 늘 우리들이 성서를 읽고 묵상하는 것이 늘 하던 대로" 처럼 생활화될 때에 맺어지는 열매이다. 오늘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주님께서 오늘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해서 우리의 오늘은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날이 되어야 한다.

 

오늘 제1독서 느헤미야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의 굳건한 성벽과 구원의 성문은 외세의 침범으로 무너지고 불타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묶여 바빌론으로 유배를 가게 되었고, 남은 사람들은 불행과 수치 속에 살고 있었다. 이에 느헤미야는 뉘우쳐 기도를 바친 뒤 무너진 성벽을 다시 보수할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긴다. 외적인 성벽 보수만이 아니라, 유다 동포 가운데 약자들의 억울함과 울부짖음에 귀를 기울이고말씀(율법)과 제사 예식이라는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세속화와 물질주의 등으로 교회 안에서도 거룩함과 구원과 은총이라는 성벽과 성문이 많이 훼손된 적이 있었다. 일부 신자들은 자기의 뜻만 고집하고 성경에 나오는 글에만 충실해서 성경의 참 뜻은 외면한 채 기복적 신앙으로 세속과 미신의 경향으로 알지 못하는 믿음 속으로 유배를 떠나고, 그나마 남은 신자들은 폐허가 된 곳에서 뭔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싶은 헷갈림 속에서 말씀과 은총에 굶주리기도 했다. 이에 느헤미야는 힘주어 말한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입니다.”(느헤8,10)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란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 주님께서 맺어주신 은총과 구원의 약속이다. 오늘 복음에서 말하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위로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 사람은 물질적인 가난을 포함해서 정신, 심리적 가난까지도 말하는 것으로 어떤 뜻으로든 불행하게 된 소외된 자들을 말한다.

 

우리들이 그릇된 가치관의 소용돌이와 자아 정체성의 상실, 거친 삶의 진창에 빠져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의 힘이 되고, 마지막 희망과 위로가 되었던 이는 누구였는가? 사람과 재물과 오염된 사상에 의존하다가 결국에는 온갖 허물로 누더기 신세가 되어도 묵묵히 품에 안아 받아들여 주시고, 온갖 하소연을 들어 주시며 응답하신 이는 오직 하느님이시다. 그 하느님이 바로 우리의이다. 복음은 이제 성령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 곁에기쁨과 힘으로 계시다고 선포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눈을 말씀이신 예수님께 돌리고 그분 안에 머물러 힘과 기쁨을 간절히 청해야 한다. 그러면 주님은 조용히 우리 곁으로 오셔서 응답하실 것이다. 에즈라는 우리게 이렇게 권고한다.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십시오, 오늘 우리 주님께 거룩한 날이니,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에게는 그의 몫을 보내 주십시오.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이 바로 여러분의 힘이니, 서러워하지 마십시오.” 어떤 세상이 펼쳐지더라도 서러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베푸시는 기쁨을 살아내자.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