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4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쉬운 듯 쉽지 않은 길

효도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효도를 어떻게 하는지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렇다
돌이켜보면 오랫동안 저와 함께 계실 줄 알았던 부모님이 제 곁을
후딱 떠나시고 나니 늘 귓전에 맴도는 소리
 “있을 때 잘하지하는 핀잔 섞인 꾸중을 듣는 것 같아 죄송함이 크다같은
의미로
신앙생활도 쉬운 듯쉽지 않은
길이다
신앙생활은 소명의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소명에
따라 살다 보면
, 칭찬을 받을 때도 있지만,

비난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 소명의 길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오해와
반대 때문에 고초를 겪기도 하기에 그 소명의 길에서 과연 이란 단어와 정말이란 단어를 수없이 반복하며 망설이기도 한다
.

 

오늘 1독서를 통해서 예레미야의 소명사화를 듣는다.

에레미야 자신이 있기도
전에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그의 존재와 삶을 성별하신 하느님께서 예레미야를 불러 명하신다
. “너는 내가 보내면 누구에게나 가야하고 내가 명령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말해야 한다.”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지무엇이 하느님의 뜻이고 무엇이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인지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 말해야 하는 소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팔이
안으로 굽듯
자기 혀에 단것을 좋아하고 자기 귀에 듣기 좋은 것만 들으려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하는 범인들에게 이 소명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하고 때로는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는 대략 3년 가까이 (27~30공적으로 활동 하셨다그 동안에 단 한번 나자렛
고향을 방문하셨다고 한다
. 사실 예수님의 공적인 활동은 맹활약이긴 해도 인정 보다는 불신을 더 많이
당하셨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당원들은 그분을 죽이기로 결정했고 친척들은 그분이 정신 나갔다고
했으며 백성들 뿐 아니라 제자들조차도 그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제 고향사람들마저 그분을 배척한다.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배척당한 이 사건은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이라고 자부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수님께서 배척
받고 돌아가실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복음의 기쁜 소식이 이스라엘을 넘어 세상 끝까지 전파될
것이라는 하느님 구원 계획의 신비를 미리 보여준다
.

 

과연 시메온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들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
“(루카2,34)이 되신 것이다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당신의 소명을 완성하신다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하셨을 뿐임에도 예수님은 칭찬과 보람의 길이 아닌반대와 시기로 힘겹고 외로운 길을 가셨다

 

자신의 뜻대로 행하다가
받는 반대와 시기라면 그 힘겨움이 덜하겠지만
소명으로서 주어진 그 길에서 받게 되는 반대와 시기는 견디기 힘들고 두려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그럼에도 수많은 예언자들과 예수님은 어떻게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소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셨을까내 팔자내 운명으로 받아들였을까오늘 2독서에서 소명 안에서 어려움을 이겨낸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그렇다사랑 안에 소명을 살아낼 힘이 생긴다.

   

우리가 평신도로 불림을
받았건 사제나 수도자로 불림을 받았건 소명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어려움은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서 또 가정생활 안에서 소명의 길을 걸어야 한다면 사랑으로 무장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남편이
혹은 아내가 그리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녀들이 내 뜻대로 살지 않는다고 버릴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다면 인내를 가지고 사랑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설사 갈라서고다 던져버리고 내 맘대로 산다 해도, (이 말은 어쩔 수
없이 이혼한 이들을 지칭하거나 비하하려는 뜻이 아니다
.) 사람은 온전히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이다. 해서 더불어 사는 것은 쉬운
듯 쉽지 않은 길이기도 하다
.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고향에서 배척 받으신 이야기다
배척 받으심에도 꿋꿋이 당신의 소명의 삶을 살아가신 그분을
기억해야 한다
즉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살아내려는 소명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누가 노래한 것처럼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다사랑받고 있는
사람 답게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하려는 것은 우리가 미사
때마다 듣는 예수님의 명령이다
.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 하여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위에서 죽음을 받아 드리셨듯이
예수님의 사랑을 살아내라는 것은 우리의 소명
이다
.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목수의 아들 예수라는 청년의 가르침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속된 사람들의 눈엔 구원자 예수님 마저도 그저 동네 이웃의 아들일
뿐이다
고향 사람들의 이런 배타적인 행동을 보시고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고 하시며 그분은 고향에서 발길을 돌리신다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예수님 시대 뿐만 아니라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잘 알기 때문에 놓치고 사는
우를 범하지 말고 모름을 인정하며 참 사랑을 살아가는 우리였으면 한다
. 신앙인으로 받은 사랑의 소명의
, 그래서 쉬운 듯 쉽지 않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