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8일 연중 제 17 주일 Fr. 김두진(바오로)강론

 

7 28일 연중 제 17 주일

귀신 하면 무섭다. 그러나 도깨비 하면 귀엽다. 우리나라 귀신은 대부분 여자인데 서양의 귀신은 대부분 남자다. 그러면 도깨비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아무튼 도깨비는 요술 방망이가 있다.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나오고, “은 나와라! 뚝딱!” 하면 은이 나오는 방망이다. 우리도 이런 방망이 하나쯤 있으면 어떨까 싶다가 사실 우리가 기적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으면서도 농산물을 먹고 살고, 옷 공장을 다니지 않아도 옷을 입고, 컴퓨터로 세상도 보고, 자동차를 타고 여행도 한다. 그 뿐인가? 값을 치르지 않고도 따뜻한 햇볕을 즐기고,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굳이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아름다운 대자연의 경치를 즐긴다. 평범한 말 같지만 내 주변을 잘 보면 기적이 아닌 것이 없지 싶다.

이번 주일의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바다 근처에 있는 광야에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의 이야기다. 복음 말씀으로 장정만 오 천 명이면 엄청난 숫자의 인원이다. 그런 여자나 아이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까? 그런 사람들을 풀밭에 앉히고 빵을 나누어 주려면 며칠이나 걸릴까? 그런데 도깨비 방방이처럼 뚝딱 모두 배 불리 먹고 남은 조각들이 열 두 광주리에 꽉 찼다고 한다. 그 짧은 시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배 불리 먹고 12 광주리나 남겼 다니 정말 도깨비 방망이의 요술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루신 빵의 기적을 통해 성체성사와 신앙의 깊은 연관성을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육신적인 배고픔 뿐 아니라, 영적인 굶주림까지도 채워 주신다. 성체성사는 이런 사랑의 주님과의 일치를 표현한다. 이 일치를 통해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고, 신앙 안에서 영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영적인 성장은 갑자기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적인 성장은 우리 일상생활의 점진적인 변화로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신앙 생활에서는 영적인 측면과 육신적인 측면이 결코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필립보 에게 하신 질문에서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6,5).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루실 기적과 같은 일을 필립보가 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보시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우리가가 아니라, ‘네가어디서 살 수 있겠는지 물으셨을 것이다. ‘우리!’ 이 의미는 제자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을 말한다. 제자들은 그들과 함께 계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 “여기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6,8). 안드레아가 이렇게 말씀드리면서 스스로 부족한 믿음을 드러낸다. 사실 우리가 생각해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많은 군중의 고픈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나머지를 예수님께서 채워 주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6,12).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은총은 부족하기는커녕, 차고 흘러 넘친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읽을 때 마다 우리 공동체의 놀라운 일들을 생각한다.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시절, 성당 문을 굳게 닫고 신자들도 성당에 나오지 못하던 그 어려운 시간에 모두가 어렵고 모두가 힘들 때 우리 성당은 오히려 힘이 넘쳐 그 하기 어렵다는 공사를 모두 마쳤다. 지붕, 종탑, 성당 안 카펫트 공사, 새 오르간, 새 전례 용품, 주차장 공사 등등. 사실 내 자신도 이런 일이 가능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그런데 정말로 도깨비 방망이처럼 생각하는 대로 뚝딱, 뚝딱 나오고 그렇게 모든 것이 넘치도록 이루어졌다. 오죽하면 우리 성당에는씨 성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했을까? 많은 이들이 익명으로 이 모든 일이 가능하게 도왔다. 이 작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은 그래서 틀린 것이었다. 사실 큰일은 작은 일의 시작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쉽지만,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우리에게 분명히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기적을 보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필요한 이웃에게 할 수 있는 조그만 일조차과연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하며 안드레아의 생각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시작하면 하느님께서 채워 주심을 믿는 우리가 되어 우리의 조그만 사랑의 실천이 이웃에게 큰 기쁨을 전달해 줄 것이다. 무슨 소용이 아니라 작은 일의 시작으로 하느님의 충만하심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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