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데로 저어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깊은 데로 저어가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오늘 복음의 말씀은 예수님이 시몬과 그 일행을 제자로 삼으신 이야기입니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소명은 사람을 낚는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러 좀 더 깊은 곳으로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의 깊은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란 뜻은 '하늘나라의 선포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즉 하늘나라의 선포는 세상에서 출가한 사람들의 몫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로 들어와 사는 이들의 몫으로 거기에서 그분을 보여주고, 그분의 말씀을 살아가야 합니다.

 

가끔씩, 어떤 분들은 내게 이렇게 물어옵니다. 종교의 자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는데 왜 유독 가톨릭교회에서는 애들에게 유아 세례를 줘 버림으로서 그들 스스로 선택할 기회를 뺏느냐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참 답답합니다. 속으로 이렇게 되묻고 싶어집니다. “왜 애들한테 물어 보지도 않고 학교에 보내십니까? 왜 애들이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 공부를 죽어라 시키십니까?” 부모가 자녀들의 요구와는 상관없이 교육시키는 것은 그것이 자녀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필요한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의 의사를 존중해서 학교에 보내거나 보내지 않는 부모는 세상에 없을 겁니다. 같은 의미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복음의 기쁜 소식을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그 신앙을 물려주지 않겠습니까? 이런 결정이나 행위는 자녀들의 종교자유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좀 더 나아가 복음을 살아가며 얻는 기쁨은 우리를 복음의 선포자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 좋은 삶을 어찌 이웃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현실적 시각으로 돌아와 보면 말이 쉽지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는 것 또 복음을 우리의 생활로 선포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오늘 제 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사실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자로서, 사도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몸입니다. 하느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누구보다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하느님의 은총이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는 불림을 받았습니다. 내 능력이나 내 지위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재물이나 명예로 사람을 낚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이 헛되지 않도록 "애쓰며" 하느님의 은총이 넘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약점 때문에 흔들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소명의 삶이란 칠삭둥이 같은 사람도 불러주시는 하느님 은총에 감사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약점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고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 안에 흘러넘침을 알아야 합니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그물을 치겠습니다.’

베드로는 직업이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전문가의 지식과 체험으로 고기를 잡으려 해도 잡지 못했지만, 자기의 전문적 지식과 체험은 버린 채 그물을 칩니다. 그렇습니다. 설사 우리가 애를 쓰고 별별 노력을 다 해보았지만 별 성과가 없거나 결과가 안 보일 때라도 낙심하지 말고 그분의 말씀에 함구함으로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도전이 됩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우리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시다."하고 말하면 늘 듣는 대답은 같습니다. “복음을 모르기 때문에 전할 수 없으니 복음을 배우신 수녀님이나 신부님들이 복음을 전해야 한다” 쉽게 말해서 뭘 알아야 전할 것 아니냐는 생각인데, 겸손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 대답은 복음 선포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입니다. 사실 복음은 '배우는 것'이 아니고 '사는 것'입니다. 생활에서의 실천이 복음 선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은 성서에 나와 있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살아가는 것이 복음 선포지 말씀을 앵무새처럼 남에게 얘기하는 것이 복음 선포가 아닙니다.

 

오늘 제 1독서에서 이사야가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게 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스스로 자기가 더럽고 그분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기에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접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옳은 생각이고 맞는 말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을 접하기에 부족하고 합당치 못합니다. 그러나 천사가 타는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댐으로 합당한 사람이 되었듯 뜨거운 성령의 은총으로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모실 수 있게 되었으며 살아갈 힘까지 얻습니다.

 

우리 신앙 안에서 출가는 집을 떠난다는 의미이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집을 떠난 다는 것은 우리의 안락함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해서 사람 낚는 어부는 세상을 등지고 기도만 하는 수도승의 삶만이 아니라 세속에 깊이 들어와 그곳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우리의 삶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게 물으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낼까? 이사야가 대답합니다.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 (이사야 6,8)

 

교회는 매 미사 때마다 이렇게 신자들을 파견합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우리는 이미 '세상 깊숙한 곳'에 그물을 내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임을 자처하는 것 아닐까요?

 

 

– 김두진 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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