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1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사랑의 계명

 

얼마나 많은 가수가 사랑을 주제로 노래를 불렀을까? 그만큼 사랑하는 것은 모든 삶의 중요한 주제다. 과연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유행가 가사로부터 자기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 하는 신학적 해석까지 다양하다. 사랑, 사랑은 무엇인가?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모든 계명 가운데 첫째가는 계명 대해 묻는다. 하느님께서는 만민을 골고루 사랑하시는 분이시므로 원수도, 죄인도, 외국인도 사랑하라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당신도 그리 실천 하셨다. 누가 나의 이웃인지 따질 것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이웃이 되어주라고 하셨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 아울러 황금률을 선포하셨다. “남이 너희에게 주시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주어라.”(마태 7,
12
루까 6.31)

 

예수님 시대의 유대인들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받은 계명을 확대 해석하여 613개의 율법 조문을 만들었다. 중에서 248 조항은 명령이고 365 조항은 금령이다. 그래서 항상 613개의 율법 조문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한가 하는 것이 논쟁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율법학자 사람 예수님께 와서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한가 묻는다.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 하신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말씀은 우리가 아는 대로 신명기와 민수기에 나오는 말씀으로, 구절이 유대교 교리의 진수이다.

 

구절을쉐마라고 불렀다. 이것은 회당에서 예배를 시작할 항상 사용하는 말로서 유대교 유일신 신앙의 기초였다. 그들은 구절을 가죽으로 만든 작은 성구함 속에 넣고, 기도할 때에 이마나 손목에 붙이고 신조를 생각했다. 쉐마는메주자라는 원통형의 작은 상자에 넣어 출입문과 모든 방에 붙여 놓고 하느님을 생각하려 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이것을 계명으로 인용했을 때에, 믿음 깊은 유대인들은 동의했을 것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은 우리 신앙에도 매우 중요하다. 사탄이자기에게 경배하면 세상의 나라의 영광을 주겠다.” 유혹했을 예수님께서는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마태 6,24)” 하시며 단호히 사탄을 물리치셨다.

 

재물에 관해서도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없다”(마태
6,24)
하셨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씀을사랑 한다 바꿀 있다. 그래서 하느님을 사랑 한다 는 것은 하느님만 사랑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 하면 사랑은 이쪽을 사랑하고, 쪽을 사랑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사람이 양쪽을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사랑은 오직 하나의 대상만을 향한 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양다리 걸치는 것을 사랑이라 할 수 없지 않는가?

 

예수님은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레위기 19장의 말씀을 인용하신다. 그런데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분께서 이웃을 사랑하라 하시니 자칫 모순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하느님과 이웃은 서로 다른 두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대상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구체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계명을 하나로 만드신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첫째가는 하느님의 계명이라는 것이다. 환언한다면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명은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서 발견된다는 말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것은 무슨 뜻일까? 제일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 몸을 사랑하고 마음을 사랑하고 생각을 사랑하고 목숨을 사랑하고 정신을 사랑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내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고 남은 다른 나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렇다! 이웃 사랑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나타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없다. 만약에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입술로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이웃사랑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래서 하나다. 무엇이 먼저고 나중이 아니라 바로 하나의 계명이다. 목숨 바쳐 사랑 하는 , 죽도록 사랑하는 . 말로는 쉽지만 행동으로는 어려운 이유가 바로 자기가 너무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래서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