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주님 세례 축일은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 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과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축일이다. 하늘이 열리며 소리가 들려오고 성령께서 내려오셨기 대문이다. 오늘로 성탄 시기가 끝나고, 내일부터 연중시기가 시작된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들으신다. 세례는 이렇듯 내 정체성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 곧 하느님임을 확고하게 믿게 만드는 성사다. 하느님의 자녀면 당연히
하느님이다. 사람에게 개 혹은 돼지의 자녀라고 하면 욕이 되듯 하느님의 자녀면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람의 자녀는 사람으로 살지만,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의 자녀는 세상일에 집착하며 살고,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며 산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 뜻에 순종하기에 오늘 1독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느님의
종이라 불리기도 한다. 하느님은 당신께 순종하는 자녀를 사랑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께 순종하시어, 오늘 2독서에서
증언하는 것처럼, 세상을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많이 하셨다. 사람이 사람임을 믿으면 두 발로 걷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본성상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태초부터 감추어진 하느님의 신비가 드디어 밝혀진다. 당신의 생명을 피조물들과 나누고자 했던 하느님의 큰 뜻이 드러났다.
하느님은 당신 스스로를 낮추시면서까지 당신의 피조물들과 함께 하고 싶으셨다. 당신의
것을 모두 내어주면서까지 사랑하고자 하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사랑 안에서, 사랑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 우리와 같아 지기를
주저하지 않으셨다.
영원으로부터 성부와
성령과 더불어 한 분 하느님으로 계시던 말씀이 여기 이 땅에 우리와 같이 사람이 되어 오셨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창조된 세상 안으로 들어오셨다. 생명의 주인이 피조물이 되셨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오셨다. 사랑 때문에, 당신께서 사랑하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사람이 되셨다.
주님의 세례 역시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 하느님이신 분이 하느님께로 되돌아서야 할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신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분이 오히려 죄인들 틈바구니에 섞여 세례를 받으셨다. 죄 없으신 분이 죄를 씻어내는 세례를 받으신다. 생명을
부여하신 분이 새 생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이들과 더불어 세례를 받으신다.
주님께서 받으신 세례, 그것은 결국 사랑이신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자 함이다. 사랑이신
분의 명을 살아 내기 위함이다.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의지의
실천이다. 나의 뜻은 물속에서 물과 함께 씻어내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채워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세례다. 사랑이 아니었던 것들,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들을 물속에 남겨두고, 오로지
사랑 그것 하나만을 향해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세례다. 생명을 갉아먹던 모든 것들을 물속에서
털어내고, 생명이신 하느님께로 되돌아서고자 함이 곧 세례성사이다. 지난주 주님 공현 대 축일에 이어 오늘 주님의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정체가 또다시 공개된다. 이번에는 하늘로부터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온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 하느님의 생명을 간직하고자
기꺼이 사랑을 선택할 줄 아는 이들,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비우고 낮추는 모든 이들이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된다.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는
오늘,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의 의도대로 우리 자신이 낮아짐으로 이웃이 커지게 된다는
사실을 배우면 좋겠다. 하느님의 자녀 되어 하느님이 되었음을 믿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내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