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연중 제 19 주일 복음 묵상
오늘 복음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다. 우리가 아는 대로 주인은 재림하실 예수님을 뜻하고 종들은 신앙인들을 뜻한다. 예수님 시대의 혼인은 약혼기간이 끝나고 혼인날이 되면 저녁 때 신랑이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을 방문한다. 그리고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함께 간 손님들과 다시 신랑의 집으로 온다. 마지막으로 신랑의 집에서 잔치가 벌어지는데, 잔치는 신랑 집의 사정에 따라 며칠 혹은 더 오래 계속된다고 한다. 잔치가 언제 끝날 줄 모르기 때문에 혼인잔치에 참석한 주인을 모시고 있는 종들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밤낮 긴장 한 채 주인을 기다려야 한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아야 한다고 한다.
오늘 1독서에 봉독 된 지혜서의 저자는 독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출애굽(이집트 탈출)을 상기시키며 하느님의 약속을 굳게 믿으라고 권고한다. "해방의 날 밤이 저희 조상들에게는 벌써 예고되었으니, 그들이 어떤 맹세들을 믿어야 하는지 확실히 알고, 용기를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지혜 18,6) 하느님의 업적과 은혜로운 개입,
특히 하느님께서 기적으로 당신 백성을 이끄시고 충실한 이들에게 상을 베푸신 파스카 해방에 대하여 묵상하는 것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충실하심에 근거한 희망과 함께 당신 백성에게 약속하신 것은 꼭 이루어 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의 실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지금 그 약속이 실현되지 않는다 해도 약속의 말씀은 꼭 성취 되리라 믿었다.
제2독서에서는 믿음을 다룬다. 믿음은 우리 존재를 위한 탁월한 기초가 된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느님에게서 특별한 은총을 얻을 수 있다. 믿음 없이는 희망도 사랑도 없으며, 사랑 안에서 하느님 뜻에 대한 헌신도 없다. 믿음은 구원사의 완성에서 하느님의 친구들, 당신의 책임자들과 협력자들을 알려 주는 표시이다. 사실 믿음은 기다림과 여정과 갈망이며 이 땅을 넘어 본향을 찾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서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히브리 11,13) 사람은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에 희망을 두는지에 따라 삶의 가치가 달라 진다. 믿음이란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미래를 약속하신 하느님께 믿음을 갖는 일이다. 언젠가는 그 약속이 성취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충직하게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게 사람의 아들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올 것이니 늘 허리에 띠를 매고 준비된 종처럼 그분을 맞아들일 등불을 켜고 있으라 하신다.
밤길에 한적한 시골길을 운전하게 되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사슴과 충돌사고를 당할 수 있다. 머리 나쁜 사슴들이 그냥 숲에 가만히 있으면 좋겠지만, 환하게 비추는 헤드라이트를 향해 달려드는 사고는 뻔히 보면서 당하는 사고다. 마치 우리를 비추는 욕심의 헤드라이트를 향해 달려드는 것은 지나친 욕심으로 자기만을 위한 삶이 현명한 삶이 아님을 알면서도 내일로 미루며 스스로를 욕심에 가두어 버리고 하늘에 쌓아 놓을 보화를 속에만 품고 사는 것은 욕망의 헤드라이트로 돌진하는 사슴과 다를 바 없지 않을까 싶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젠가 사라져 버린다. 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은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존재들이다.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은 신앙인이라면 우리 주위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들을 외면 할 수 없다. 참된 기다림은 무턱대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며 주인이신 주님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오늘의 복음말씀이다. 그것이 깨어 기다리는 신앙인의 모습이며, 우리의 삶을 기쁨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 하신다.
우리게 내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일은 확실한 내일이 아니라 불확실한 내일이다.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었기에 내일도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일 뿐이다 그 종이 주인이 늦게 오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하인들과 하녀들을 때리고 또 먹고 마시며 술에 취하기 시작하면,… 먹고 마시고 때리는 행위는 자신을 위한 행위이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아직도 내 자신만을 위한 삶에 만족해한다면 우리는 지금인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허망한 내일에 기대어 사는 사람일 것이다. 내일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은 준비된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 여기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것은 꼭 재물 만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재능, 시간, 돌봄,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들은 엄청 많다.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나를 위한 동작이지만, 우리가 들고 있는 등불은 자신을 위한 등불이 아니다. 주인을 기다리며 주인에게 비춰줄 등불, 즉 남을 위한 등불이다. 자신에 속지 말고, 내일에 속지 말며, 허리에 띠를 맨 사람처럼(자신을 위해 준비하고), 등불을 켜 들고 서 있는 사람처럼, (이웃을 향한 등불을 켜고) 죽음의 헤드라이트를 쫓아가는 사슴이 아니라, 세상을 환히 비출 등불을 켜든 사람으로 살아야 함은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실천해야 할 우리의 사명이다.
미래가 불확실함에도 아브라함은 준비된 사람으로 주님을 믿었다. 오늘 2독서에서 믿음의 조상인 그는 준비된 자로(be ready)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여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믿음의 준비가 되었나?
Are You Rea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