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7일 대림 제 1 주일
대림 시기는‘예수 성탄 대축일’ 전의4주간을 말한다. ‘대림’이란‘오시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도착’을 뜻하는 라틴어 ‘아드벤트스(Adventus)를 번역 한 것이다.
오시는 분은 예수님 이시다. 그렇지만, 그분은 이미 이천 년 전에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심에도 그분께서 이루신 구원의 신비를 새롭게 기념하려는 교회는 전례를 통하여 그분의 탄생을 매년 되풀이하여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한 해의 전례주기는 대림 첫 주일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태 24,42) 예수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 첫날 복음은 우리에게 종말을 상기 시킨다. 깨어 있음!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부하시는 말씀이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33)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할지는 문지기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다. “그것은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경우와 같다. 그는 집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자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 에게는 깨어 있으라 분부 하신다.”(34) 여기서 기약 없이 집을 떠나 여행길에 나서는 이 집주인은 죽음의 길을 가실 예수님을, 집으로 돌아올 주인은 재림하실 사람의 아들을 가리키며, 집은 교회 공동체를, 종들은 공동체에 책임을 맡은 제자들을 암시한다.
문지기는 밤에도 깨어 있으면서 행여 돌아올 집주인을 기다린다. 문지기는 집주인이 언제 올지 예상할 수 없다.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35) 문지기가 할 일은 주인을 모셔드리기 위해 깨어 있는 일이다. 제자들에게 기대하신 것도 깨어 있는 것이지 잠을 자는 것이 아니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힘겹게 기도하실 때도 제자들이 자신과 함께 깨어 있어 주길 바라셨지만 그들은 잠에 빠졌다.(14,32-42) 그 결과 제자들은 앞으로 닥칠 일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
‘깨어 기다린다.’는 것은 ‘종말의 때’를 동경하면서 그때를 계산하는 따위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리는 삶이다. 종말은 해가 바뀌듯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방식으로 올 것이다. 종말이 오히려 구원이 성취되는 때라고 믿는 이들에게는 그때를 정확히 알 수 없다 해도 깨어 기다리는 것이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의 사명에 충실하면서 사람의 아들이 오실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갑자기 돌아오신 주님께 저마다 맡은 사명과 책임을 얼마나 충실히 수행했는지 보고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 지리라."며 모든 이가 평화를 누리는 구원의 날을 노래 한다. 이스라엘은 외적으로는 강대국 사이에서, 내적으로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공정과 정의가 훼손된 상태에서 위협과 대립, 갈등 상황을 지속해 왔다. 그런 와중에 백성의 마음에 싹튼 평화에 대한 열망은 주님이 오셔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는" (이사 2,4) 그날을 향한다.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이사 2,5) 아직까지 어두운 현실을 걷는 이들을 독려하는 목소리다. 아직 오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오실 빛! 나를 둘러싼 어둠에서 한 발 밖으로 내디딜 때 이미 빛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여전히 복잡하고 버거운 현실에 묶여 있다고 실망할 필요 없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촉구한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로마 13,11) "때"가 가까이 왔다. 깨어 있음은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이다. 어둠을 헤치고 번지는 빛은 포말처럼 퍼져 나가는 기쁨과 같다. 기쁨을 소유한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은"사람이다. 깨어 있음은 기쁨으로 열린 상태다. 주님이 오실 때 우리 안의 기쁨이 오시는 그분을 알아보고 맞이할 것이다.
신앙인은 문지기와도 같다. 하느님을 기다리는 사람한테는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오실 분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이 주어질 것이다. 충실히 주인을 기다리는 마음이 없으면 구원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분은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인만을 고대하는 신앙 태도를 당부하기 위해서 우리 마음의 문 앞에 오셔서 고요를 깨울 것이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문지기이기도 하다. 마음에 들어오려고 문 앞에 서 있는 모든 생각에 대해,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한지 해로운지를 물어야 한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생각인지 오염된 세상에 안주하려는 생각인지는 깨어 있어야만 분별할 수 있다. 깨어 기다리는 자에게는 종말이 희망의 시간이 된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미래 지향적인 희망과 함께 우리를 두 개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하나는 그날과 그 시간, 즉 재림의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깨어 있어야 하는 시간 현재의 시간이다. 깨어 있음이란 원칙이 있는 삶을 말한다. 그 원칙이란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마음 일 것이다. 이 원칙을 깨고 누군가 미워지는데도 용서하기 위해 아무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잠자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람은 노아의 방주를 만들지 못해 결국 물속에 잠기고 말 것이다. 노아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 배를 만든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의 계명인 사랑을 지켜 마지막 심판을 이기게 될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
사랑의 주님 어서 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