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 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2023년 계묘년의 새해가 밝았다. 오늘 제 1 독서에서 민수기에 보면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 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베푸 시리라”(민수6,24-26) 고 한다. 복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주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시면 복을 누릴 수가 없다. 내가 무엇을 잘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복을 누리는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 위로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겠다"(민수 6,27).
주님께서 사제인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백성을 위해 축복을 명하셨다. 타인을 축복하고 복을 빌어 주는 것은 사제뿐만 아니라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인, 아니 하느님의 모상인 모든 사람의 권한이고 의무일 것이다. 기도하는 우리 시선이 자신의 욕망과 안위에만 고착되어 있지 않고 타인의 선과 유익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도 진심으로 염려하고 응원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축복의 기도는 축복하는 이와 축복을 받는 이 모두 하느님을 기쁘게 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복을 잘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우리였으면 한다.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라고 한다. 토끼 하면 생각나는 것이 별주부전이다. 거북이의 꼬드김에 용궁에 오른 토끼는 간을 꺼내기 위해 배를 갈라야 한다는 말에 간을 소독하기 위해 말리려고 육지에 두고 왔다는 기상천외한 꾀로 목숨을 부지한다. 사람들은 토끼를 신성화 해서 토끼를 달에다 올려놓아 계수나무 아래 떡방아를 찧는 상상의 동물로 등장시켰다. 그렇다고 늘 꾀가 넘쳐나고 지혜롭지는 않다. 거북이와 경주에서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어리석고 게으른 동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는 절묘한 배치라 할 수 있다. 약자라 해서 너무 옹호하다 보면 오히려 미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에 게으르고 자만심이 넘쳐난 끝에 어리석다는 표현을 삽입함으로써 토끼는 여전히 가련하고 연약한 존재로 남는다. 이 땅에 서식하던 토끼는 회색, 갈색 털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끔 보이는 흰색 토끼가 조상들의 눈에는 퍽 신기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에 "토끼는 천 년을 사는데 5백 년이 되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라는 기록을 남겼다. 흰 토끼에 장수의 의미를 불어넣은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모두 장수하고 건강한 해가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오늘은 새해의 첫날이며 은총이 가득한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 축일이다. 축복이 가득한 새해 첫 날의 말씀들이 일제히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인 "기도"를 향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 이것이 바로 마리아의 기도인, <말씀에 머물러 되새기는 기도>다. 성모님은 기도의 모범이시다. 처음 잉태 소식을 들었을 때도 천사의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루카 1,29)하셨다. 마리아는 이처럼 말씀을 마음과 육신안에 품으셨다.
<말씀에 머물러 되새기는 기도>는 말씀이신 분의 현존 안에 온전히 잠기는 기도다. 다가오신 말씀을 온 존재로 품다 보면 그분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원하시는지 머리가 아니라 영혼이 감지한다. 말씀이신 분의 정감이 내게 스며들어 당신을 드러내시면, 이내 문자는 사라지고 문자 안에 감추어졌던 주님의 속성, 주님의 마음이 만져진다. 그 주님과 하나 되어 일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바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는" 기도다. 이때는 무얼 바라거나 청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분과 사랑 안에 잠겨 사랑하면 된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은 순종의 모범이시다. 천사를 통해 주어진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 뜻대로 실천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성모님을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 복된 여인으로 부른다. 우리 또한 말씀대로 행하는 가운데 복된 사람으로 거듭나는 한 해 되시기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성모님은 엘리사벳의 입을 통해 “행복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신 분!”(루카1,45)으로 불렸다. 사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누리는 것”(갈라3,9)이다.
시편24,4에서는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옳지 않은 것에 정신을 쏟지 않는 이, 거짓으로 맹세하지 않는 이 라네. 그는 주님께 복을 받고 자기 구원의 하느님께 의로움을 인정받으리라.”라고 한다. 허망한데 뜻을 두지 않는 사람으로 복을 누리는 우리였으면 한다. 많은 이들이 주님께 마음을 두지 못하고 인간적인 욕심 때문에 복을 잃어버린다. 올 한 해는 주님 안에서 복을 만들고 또 빌어주는 해가 되면 좋겠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이 없다. 다만 내 마음이 흔들려서 그분의 사랑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지금의 복을 누리기 위해 지나간 과거에 매이지 않는 우리였으면 한다. 과거에 매이면 앞으로 나길 수 없고, 지금 받은 복에 감사할 줄 모르면 더 큰 복이 주어져도 복으로 여기지 못하고 앞으로 받을 복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처지에 감사하고 기뻐 하시기 바란다.
은총이 가득하신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