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교회는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얼굴 살갗이 빛나게 된 사실 (모세의 변모 축일)을 (탈출 34,29-25) 6월 29일 지내왔는데 지금은 사도 베드로와 바오로 축일로 바꿔 지내고 있다. 그 후 40일 후인 오늘 (8/6)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지내며, 변모 축일 40일 후인 9월 14일에는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낸다. 이는 구원은 십자가로 완성된다는 것을 교회 전례로 표현하는 것이다. 모세가 하느님을 만남으로써 거룩하게 변화 되었으며 그리스도를 닮는 참된 변화는 십자가로 이루어진다고 전례는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이루어야 할 거룩한 변모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2)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났다는 것은 주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요한 1,9)이심을 나타낸다. 그 빛은 우리 인간의 마음에 보이는 빛이며 마음의 눈에 보이는 해이며 지혜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주님의 옷은 그분의 교회를 의미한다. 그 옷자락은 손을 대기만 하여도 병이 나은 여인처럼, 구원을 받는 그분의 교회를 뜻한다.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신다.” (3) 율법의 창시자 모세와 그 삶의 실천을 촉구하던 예언자의 대표로 엘리야가 나타난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완성하러 오신 분이며 부활의 영광을 입으실 분임을 말하고 있다. 루카 복음에는 변모된 예수님과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9, 32)고 한다.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었다. (마태 16, 16) 그런 분이 수난과 죽음을 통해 부활하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어찌 구원자 주님께서 죽음에 이르는 고난을 통해서야 구원을 이룰 수 있는지 제자들은 물론 우리도 알아듣기 힘들다.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부활하신 후 예수께서 누리실 참된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사건이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이루셔야만 하는 일보다 그분의 영광스러운 모습에 매료되어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드리겠다.”(4)며 생뚱맞게 청원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초막은 의인들이 하느님께 받는 영원한 거처를 뜻한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초막은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 지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실 일을 통해 (16, 21) 당신 친히 우리를 위해 지으실 초막이어야 한다.
인간적인 모습에서 보면 베드로가 산 아래로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지내고자 한 것은 주님의 이런 영광스러운 모습이 너무 반갑고, 행복해 영광을 얻기 위해 겪어야 할 고난의 여정과 슬픔의 여정을 생략하고 싶은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를 데리고 산 아래, 곧 고난과 어려움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신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영광을 얻기 전에 반드시 겪어야 할 여정으로 제자들을 이끄신다.
초막을 짓겠다는 베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 빛나는 구름은 의인들에게 그늘을 드리워 주고 그들을 보호해 주고 그들을 비추는 구름이다.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구름 속에서 들려온 말씀은 예수님을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신다. 아버지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아버지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답이다. 듣는다는 것은 행하라는 것이며, 바로 예수께서 보여주신 모범대로 사는 것, 곧 자기 뜻대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따로 데리고 산에 오른 제자들은 거룩하게 변모된 예수님을 목격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 행운 안에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극복하고 전해야 할 신앙과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날 때까지 (9) 함구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예수께서 함구령을 내리시는 까닭은 메시아는 수난과 죽음의 고통을 넘어 부활로 그분의 계시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께서 오르신 높은 산 (1)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몰려올 종말론적 산인 동시에 우리가 가야 할 골고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 27, 33; 이사 2, 2-3 참조)
거룩한 것을 체험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압도되어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소리를 듣고 얼굴을 땅에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 떠는 제자들 (6)에게 예수님께서 다가와 다정히 손을 대시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7)고 격려하신다. 두려워 하면 십자가는 더 무겁고 더 무섭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힘듦과 노력 없이 얻어지는 것은 유혹의 밑밥일 뿐 진정한 기쁨과 영광은 오늘 우리가 짊어진 십자가 뒤에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영광이 머무는 곳에 머물려 하던 베드로의 유혹에서 “하느님의 힘에 의지해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도록” (II 티모1, 8) 불린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 한다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 된다.
주님께서 골고타의 죽음을 통해 영광스러운 부활에 이르셨듯 우리의 삶 안에서 깎아내고 잘라내는 골고타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몸은 쉴 틈 없이 늙어가지만 우리의 영혼이 십자가 위에서 쉴 새 없이 젊어 지고 있다면 우리는 지금 분명 영광스럽게 변모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