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3 주일 세계 가난한 이의 날
어떤 분이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 노라 말하며 시간이 없어서, 정신없이 사느라, 경황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 이렇게 핑계를 대며 변명하던 자신이 늘 없다고 하면서 얼마나 스스로를 빈곤하게 만들었는지 놀랬다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 주인에게 탈렌트를 나누어 받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랜 뒤에 주인이 돌아왔고 주인은 그들을 불러 셈을 시작한다. 셈이 끝나갈 무렵 한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도로 가져와 내어놓았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인님이 모진 분이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두려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능력이 없어서 못했어요.” 그래서 결국 그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땅 속 깊이 숨겨 두었다고 한다. 어쩌면 앞서 말한 것처럼 가진 것이 없는 듯하여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나누어 사용 하지 못하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사람과 같지 않을까 싶었다.
마태오 복음 25장에서는 두 편의 비유말씀이 있다. 지난주 말씀인 열 처녀의 비유 와 오늘 복음말씀인 탈렌트의 비유가 그것이다. 하늘나라는, 주인이 종들에게 능력에 따라 재산을 나누어 준 것과 같다. 모든 사람이 같은 능력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여기서 누가 더 받고 누가 덜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달란트는 약 6,000데나리온이며 1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이다. 즉 6천일 동안 일하려면 쉬는 날 없이 16년을 넘게 일해야 하는 엄청난 돈이다. 한 달렌트나 다섯이나 두 탈렌트는 종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이라고 봤을 때 오늘 복음의 비유는 누구의 능력이 더 큰지가 아니라 각자 받은 탈렌트를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강조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다섯 탈렌트와 두 탈렌트를 받은 사람이 더 많이 벌었기에 칭찬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한 탈렌트만 받았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외면하고 땅에 묻어버린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한 책망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 탈렌트가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그 돈을 받은 종이 왜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전락하였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한 탤런트가 엄청난 금액일지라도 다른 종들과 비교해 볼 때 너무 적게 보였고 자기 능력에 비해 턱없는 대우를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는 주인의 성실한 종이 아니라 주인의 반대편에 서서 그와 맞서 보려는 잘못된 판단으로 게으르고 악한 종이 된 것은 아닐까 싶다.
복음에서는 받은 것에 감사하지 않는 게으른 종을 악한 종으로 본다. 사람의 몸이 게으르다고 해서 그의 혀까지 게으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입은 불평하는 것으로 분주하고 모든 일에 핑계를 대느라 매우 바쁘다. 이 게으른 종은 주인을 비판하기에 매우 바쁘다. 성실한 종들은 단지 주신 것으로 더 벌었습니다 (20절)라는 말이 전부였지만, 게으른 종은 계속 불평하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느라 정신이 없다. 따지고 보면 다섯개의 빵과 두 마리 생선으로 오 천명을 먹이신 기적도 아무 가치가 없어 보이는 작은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감사했기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시작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성실한 신앙인의 삶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신앙생활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 하기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것에 대한 감사에서 시작된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기는데”(마태 25,18) 그 이유가 매우 불순하다. 주인을 모진사람으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분이라고 확신하며 고리대금업자 보다 더 악독한 사람으로 인식한다. 그에게 맡겨진 달란트는 스스로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감히 건드리지도 못할 주인님의 달란트(25)였다. 또한 생산적인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 대신 주인의 됨됨이를 따져 자기 주인은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모진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버린다. 당대의 바리사이들을 겨냥한 말씀으로 들린다. 그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하느님의 성품을 연구하느라 생산적인 일에는 매달리지 못했다. 따라서 셋째 종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 되었으며 주인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대로 행하지 않는 쓸모없는 종이 되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져…거기서 울고 이를 가는 고통의 장소로 내던져지게 된다. (30)
주인은 셋째 종이 가지고 있던 달란트를 빼앗으라고 명령한다. (28)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 지는 수혜자가 다섯 혹은 두 탤런트를 더 벌은 사람이 아니라 “누구든지”로 변한다. (29)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런 사실을 영성적으로 풀이하여 지금 영적인 부를 쌓은 사람은 종말에 더 부유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종말에 더 초라해 질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얼마의 달란트를 받았을까? 아니 더 중요한 질문은 나는 얼마나 생산적으로 살아가는가? 영적인 표현으로는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지, 연중 33주일을 지내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을 일주일을 앞에 두고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 아닐까 싶다. 교회력의 마지막 즈음에서 이렇게 묻고 싶다. 나는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릴 그분의 친구일까, 아니면 "쓸모없는 종"일까? 그나저나 하느님나라에서 셈할 돈은 얼마나 벌었을까?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 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마태 2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