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5일 연중 제 21 주일 Fr. 김두진(바오로) 강론
8월 25일 연중 제 21 주일
오래 전에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카피가 있었다. 사소한 물건을 하나 사는 데도 순간 잘못 선택하면 오랜 시간 마음고생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고 또 결정하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만은 아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고 나머지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생각은 많아질 수밖에 없기에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라는 유행가처럼 자꾸 망설이게 된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계명이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놓고 선택해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 앞에서 결딴을 내려야 한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여호수아는 자기가 죽게 될 때를 알게 되자 백성들을 모아놓고 결단을 촉구한다. “만일 주님을 섬기는 것이 너희 눈에 거슬리면, 너희 조상들이 강 건너편에서 섬기던 신들이든, 아니면 너희가 살고 있는 이 땅 아모리족의 신들이든, 누구를 섬길 것인지 오늘 선택하여라. 나와 내 집안은 주님을 섬기겠다.” (여호 24,15) 여호수아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주님만을 선택해야 함을 아주 강력하게 확인하고 또 다짐을 받는다.
2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에 비유한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이는 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를 두고 이 말을 합니다.”(에페 5,31-32). 여기서 무심코 지나치지 말아야 할 구절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난다.’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마치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둘 다 보존되듯이 (마태 9,17)자신이 성장하면서 몸에 밴 모든 고정된 사고방식을 뛰어 넘어, 또 다른 삶의 자리를 가진 배우자와의 새로운 만남으로 도약하라는 말씀일 것이다. 과거의 헌 가죽 부대만을 고집한다면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오늘 독서와 복음이 우리에게 요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신앙의 결단이다.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매순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결단이 필요하며, 한 번 결단하고 나서는 거기에 끝까지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독서와 복음의 가르침이다.
오늘 복음도 같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원히 살 수 있다고 가르치시자 유다인들은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하며 말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6,60)하는 결론을 내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떠나갔다.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물으신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6,67) 열 두 제자를 향한 외침은 꾸중이 아니라 마음을 다지라는 말씀이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6,68-69 주님을 완벽하게 알고 고백한 것은 아니었지만, 참으로 두려운 고백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십자가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부활의 길이기에 망설여진다.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는 세상 안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의 힘겨움과 외로움을 알기에 망설여진다. 입으로만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은 쉽지만, 삶의 결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믿음! 그것은 끊임없는 결단의 과정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물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자기 식의 편안한 신앙생활을 즐겨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함께 하는 것,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전체는, 아주 작은 일상의 일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을 떠날 것이냐?' 라는 선택과 연결되어 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가겠느냐?" 인간적으로는 몹시 두려운 결단이고 비록 예수님을 이미 떠난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우리는 이 결단을 통해서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기에 신명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해서 우리는 외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