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축성 생활의 날)
오늘은 예수님의 탄생 후 40일이 지난 다음, 산모였던 성모님의 정결례와 함께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리고 봉헌되는 예수님을 향해 예언자 시므온이 이야기한 대로 모든 이에게 구원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신 예수님을 기념하며 우리는 한 해 동안 주님의 빛을 밝혀줄 초를 축복하게 된다.
예수님이 마리아와 요셉의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라 성령에 의해 태어난 아기일지라도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는 첫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는 봉헌례와 산모의 부정을 벗는 정결례를 치러야 했다. 모세가 정한 율법에 의하면 산모는 아들을 낳은 경우에 1주간 부정기간과 33일의 정결기간을 보내고 40일째 되는 날, 딸일 경우에는 2주간 부정기간과 66일의 정결기간을 보내고 80일째 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1년 된 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비둘기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치는 정결례를 치러야 부정을 벗고 정결을 찾는다고 했다. 가난한 사람일 경우 비둘기 두 마리만 바칠 수도 있다. (레위 12,1-8).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시고, 전 세계 교회가 이를 거행하도록 하셨다. 교황께서는 봉헌 생활은 형제자매들에게 예수님의 삶과 행동을 일깨워 주는 “살아 있는 기념”이라고 하셨다(교황 권고– 봉헌 생활, 22항). 수도생활을 봉헌생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수도생활의 본질이 '바치는 데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바치려면 비워야 하는데 수도자인 내게 부끄러움을 더해 준다. 수도자들의 날을 맞이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얼마나 주님께 바쳐드리고 있는지 반성해 보니 부끄럽다. 수도서원 40년을 맞는데도 과연 내 삶이 바치는 삶이었는지, 비우는 삶이었는지, 자기를 죽이는 삶이었는지, 그저 부끄럽기만 하다.
오늘 복음은 아기 예수의 부모가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동시에 봉헌하는 삶을 위한 정결예식을 성실히 따르는 예수 부모의 순종도 아울러 볼 수 있다. 그리고 메시아를 고대하던 두 증인을 통해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재확인하는 거룩한 광경을 본다. 따라서 오늘복음의 주제는 봉헌이다.
봉헌이란 내 삶이 내 소유도 아니요, 부모 소유도 아닌 하느님의 소유임을 확인하는 거룩한 예식이다. 예수님의 삶도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으셨던 것처럼 우리 생명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주님 뜻대로 쓰이도록 내놓아야 한다.
하느님은 예수님의 부모가 아기 예수의 할례와 정결 예식을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오자, 두 명의 증인들은 성령에 이끌려 아기 예수님을 만난다. 예언자 시메온은 첫눈에 아기 예수님이 메시아요,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의 구세주로 알아본다.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안고 한 시메온의 예언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관한 하느님 자신의 계시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을 보게 된 시메온은 이제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고 메시아 예수님은 이방인의 빛이요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라고 예언한다. 그의 예언을 보면 그는 주님을 3년 반이나 따라다닌 제자들보다도 주님을 더 잘 알고 있었다.
안나 역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예언자 안나는 결혼 7년 만에 남편을 잃고 84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 성전에서 밤낮 없이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겨온 사람이다. 안나의 삶은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들의 모범이다. 이스라엘의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임박한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이들이다. 안나는 이들을 대표하는 자로 묘사되며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교적 과부들의 가난하고 경건한 삶을 이끌 수 있는 모범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그녀가 시므온의 팔에 안겨 있는 아기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령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 (38절)
오늘 미사에서 주님의 빛을 밝힐 초들이 축복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제단에서, 또 여러분의 기도 자리에서 큰 빛이신 예수님이 성전에 봉헌되는 작은 아기의 모습으로 성모님께 안겨 있듯 그 작은 촛불을 처음으로 밝히게 될 것이다. 그 빛이 자라고 자라 이 세상을 구원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초들에 불을 붙일 때도 이 빛을 바라보는 우리들이 이방인들의 구원의 길이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빛이시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작은 불꽃들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어둠을 밝히는 뜨거움으로 세상을 밝히고 구원을 전하는 우리가 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