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적인 도둑질과 교황님의 회칙
야외미사를 마치고 예수 고난회 모임 때문에 디트로이트에 있는 피정 집에 다녀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생태와 환경에 관한 최초의 회칙 찬미 받으소서(Laudato Si) 를 통해 공동체적 삶과 개인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묵상했습니다. 예일 대학 (Yale University) 두 분의 교수님을 모시고 생태학에 대해 많이 배웠고 또 묵상도 많이 했습니다.
이 회칙의 밑바탕에 깔린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주고 싶습니까?” 입니다. 이 질문은 결코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없고, 환경만을 따로 떼어 놓고 던질 수 있는 질문도 아닙니다. 이러한 질문 자체가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세상에 온 목적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사는지에 관한 고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간 전체와 개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의미, 그리고 가치에 관한 고민입니다. 회칙은 6개의 장으로 나누어 전개됩니다. 우리의 환경파괴 현실을 파악하고(1장), 유다-그리스도교 전통과 성경을 분석하여 피조물에 대한 인류의 책임을 돌아보도록 합니다. (2장). 또한 기술 관료제가 가진 문제의 뿌리를 살펴보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우리의 자세를 분석합니다.(3장). 회칙은 통합적 생태론을 대안으로 제시하며(4장), 실제적인 접근법과 행동양식을 제안합니다. (5장). 마지막으로 교황님은 우리 모두를 회심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6장).
4일 간의 세미나와 회합을 끝내고 곧바로 성당으로 돌아오기 위해 운전을 했습니다. 3시간을 달렸더니 온몸이 뒤틀립니다. 내려서 맨손체조라도 해야지 하고 휴게소에 내렸는데 목마름이 급해 한통의 물만 달랑 사들고 성급히 돌아왔습니다.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려는데 갑자기 봉이 김 선달이 생각났습니다. 어릴적 한강 물을 팔아먹은 봉이 김 선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짜였을까 의아해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불란서 봉이 김 선달에게 물을 사 먹고 있으니 갑자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란서제 생수… 어느덧 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어릴 적 개울가에 흐르는 물을 맨손으로 받아 마셔도, 한강에서 멱 감다가 배고프면 배가 통통해지도록 마셔도 아무렇지 않았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서글퍼졌습니다. 군대 가기 전이였나요? 한강에서 잡아 올린 싱싱한 민물고기의 회와 매운탕의 추억은 잊지 못할 젊음의 추억입니다. 간디스토마니 하는 병은 배부른 사람들이나 걱정하는 부자병으로 간주하고, 장독에서 금방 퍼낸 고추장 한 통에, 마늘 몇 통, 강가 옆에 있는 내 밭이 아닌 우리 밭에서 넉넉한 인심으로 따낸 풋고추 몇 개면 친구들과 몇 번의 투망질에 "댓병"이라 부르는 커다란 병의 소주를 다 마실 수 있었습니다. 벌겋게 달아오는 소주의 기운처럼, 온 세상이 벌겋게 물드는 저녁놀의 강가에서 돌멩이 너덧 개로 세워 만든 아궁이 위에 찌그러진 솥… 남은 것은 다 넣고 끓이는 매운탕은 불러오는 배처럼 넉넉한 마음을 끓여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백사장에 누우면 별들이 쏟아져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하며 별들을 세어내고 삼중창의 화음으로 우정을 가득 채워 별들과 함께 한참을 웃을 수 있었습니다. 얼큰한 마음에 친구들과 어울려 젊음을 노래하다 통행금지에 걸리면, 동네 순경 아저씨께 꾸벅 인사만 해도 허허 웃으시며 던지는 한마디 "안 자?"였기에, 아무런 걱정 없이 추워 몸이 오그라질 때까지 젊음의 풋풋함을 노래했었습니다.
물이 땅속에 스며들어 다시 퐁퐁 솟는 샘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시간은 얼마나 긴 시간일까요? 땅속에 저장된 물을 미리 퍼 내 마시는 것은 우리 자손들의 물을 도둑질해 먹는 것이니 애들에게 미안해집니다. 천연 암반 수라고 선전하는 말처럼 천연덕스럽게 후손들의 물을 훔쳐 마시는 합법적인 도둑질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문제의 심각성은 우리가 물만 도둑질하는 것이 아 니고, 후손들이 가져야 할 추억까지도 도둑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강가에 앉은 친구들과의 어울림은 독서실에 틀어 박혀 머리 질끈 동여 맨 홀로 치르는 전쟁이 도둑이고, 찌그러진 솥에서 오래 끓던 매운탕은 멋들어진 냄비에 '계란 탁 파송송'의 빨리 끓는 라면이 도둑이며, 별빛을 쳐다보며 강가에 누워 "저 별은 나의 별"하던 화음의 추억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노래방과 단란주점들이 도둑질 해 갔고, 호루라기와 방망이가 전부였던 동네 순경아저씨는, 수갑과 권총 찬 서부의 사나이로 우리 애들이 가질 풋풋함을 도둑질하고, "안 자?"하고 물어오시던 넉넉함은 "잡아!"하는 초조함이 도둑질해 가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해서 기성세대인 우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아니, 우리 애들의 미래가 담긴 추억들을 도둑질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나저나 우리가 땅 속에 파묻힌 물을 다 퍼마시면 미래의 우리 애들은 뭘 마시고 살까요? 달나라의 물은 마실 수 있을까요? 제발 달나라에 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애들이 달나라에서 그나마도 도둑질 못해오면 우리 애들은 뭐 마시고 살지요? 끔찍한 상상으로 비닐봉지에 공기도 담아 파는 세상이 올까 두렵습니다. 제발 공기만큼은 훔치지 않아야 할 텐데,…. 우리가 더럽히고 있는 공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지나친 편안함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교황님의 회칙은 사뭇 심오하고 심각한 것에 비해, 쉽게만 살고 편하게만 사는 것이 미래를 도둑질하고 있다는 자책에 후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나와 가족, 인류 공동체와 생태적 가정인 지구를 위해 겸손과 절제와 검소함을 선택하는 기도를, 소비주의의 유혹을 거부하고 나눔과 섬김과 찬미의 기도를 실천하는 약속을 다짐하면 어떨까요?
김 두진(바오로)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