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2023 년 1 월 8 일 주님 공현 대 축일

술에 취한 한 사람이 한참 비틀비틀 걷다가 전봇대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전봇대를 잡고 서너 바퀴 빙빙 돌더니, 전봇대에 기대어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이렇게 중얼거렸다. “큰일 났네, 사방이 꽉 막혀 버렸어!” 참고로 내 얘기가 아니다. 휴가 가서 술에 만취하는 저를 기대하지 마시라! 살다 보면 사방이 완전히 막혀 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길이 없어진 게 아니라 내가 마음이 급하여 보이지 않을 뿐이다. 내 욕심이 길을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진시왕도, 헤로데도 천년만년 권력을 잡아 살 줄 알고 욕심을 부렸지만, 그들의 세상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내 것을 움켜잡지 말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야 한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 축일이다. 공현이라는 말은 공적으로 드러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받았고 황금, 유향, 몰약을 선물로 받으셨다. 이로써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구세주가 아니라, 모든 민족들의 구세주가 된다는 것을 드러내셨다. 동방박사들을 떠나게 만든 것은 별이었다. 하늘에서 빛나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그들만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들이 별을 보았기 때문에 길을 떠났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길을 떠났기 때문에 별을 보았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들의 마음은 참 지혜에 열려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하늘이 그들에게 보여 주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동방 박사들은 믿는 이들의 모습이다. 하느님에 대한 거룩한 갈증이 믿는 우리 마음 안에 솟구치게 해야 한다. 그렇다. 베들레헴의 구유를 향해 길을 떠난 동방 박사의 모습은 말씀을 찾아 나선 신앙인들의 여정을 말해 준다. 그들은 별을 보고 인간에게 주어진 구원의 말씀을 찾아 떠났다. 그들이 볼 수 있었던 것은 밤하늘에 수 없이 떠있는 별들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따뜻하고 안전하던 자기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난다. 오래전에 아브라함이 자기 친지와 친척과 고향을 버리고 떠났듯이, 그들도 떠났다. 떠남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 했듯 그들의 여정 안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이 그리워 그들의 마음이 어두웠을 적도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왕을 찾아 헤로데 왕에게 묻지만, 그들에게 들려진 것은 간교한 주문뿐이었다. 이 모든 방해와 스스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향한 동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말씀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 뵙고 경배한 다음 준비한 예물을 바치고, 그들은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멀었는지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없이 조용히 퇴장한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말은, 하느님에 대해 알려줄 예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외면하였고, 먼 이방에서 사람들이 찾아와 그분을 경배했다는 말씀이다. 불행하게도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셨지만, 오히려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스라엘 민족의 테두리를 넘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고 받아들여진다. 이처럼 동방박사(이방인)의 열망과는 달리 헤로데 에게는 다른 속셈이 있었다. 동방 박사들이 여정을 거의 마칠 무렵까지 헤로데는 잠들어 있었기에 혼란스러웠고 두려웠다. 동방박사들의 출현으로 역사를 뒤바꿀 새로움에 직면했을 때 혼란스러움 안에서 어쩔 줄 모르는 헤로데의 모습에서 앞으로 벌어질 예수님의 삶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짐을 보게 된다.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변화와 새로움을 막으려 하는 것처럼, 변화와 뒤바뀜을 두려워하는 헤로데는 간교한 계략으로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고만 한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한다. 찾겠다는 마음과 그것을 좇아 떠나겠다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길을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살았던 삶의 온상을 떠나는 것이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있듯이 우리게도 수많은 욕심이 별들이 함께 떠 있다. 화려한 왕궁처럼 재물이나 지위가 꾸며주는 화려한 별은 하느님의 별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나은 지위를 얻어, 우월감을 가지고 살겠다는 화려한 별도 말씀의 별이 아니다. 말씀이 초라한 구유에 한 아기의 연약한 모습으로 누워 있음은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말씀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 길을 가는 우리가 무슨 별을 봐야 하는지 알려 주는 말씀이다. 어두운 밤에 별이 빛나듯, 초라하고 고통 당하는 약한 이웃을 외면하면, 말씀에로 인도하는 별은 사라지게 된다. 초라한 사람들과 고통을 당하는 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하느님의 보살핌 안에서 우리가 살듯 우리의 보살핌의 마음 안에서 별은 빛나고 주님의 말씀은 살아 계신다. 그것이 우리가 바쳐야 할 황금(재물)과 유황(기도)과 몰약(자기 죽음)이다. 별은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기심과 헛된 망상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인다. 초라하고 고통스러운 약자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주변에 무수히 많다. 그것을 향해 떠나야 한다. 그러면 우리를 인도하는 별이 빛을 낼 것이다. 우리의 이리심과 무관심의 온상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한다.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야 한다. 하느님은 이런 시시함 안에 계시지 않으신다. 오늘 성탄의 화려한 장식을 벗겨내는 날이다. 대신 신앙의 불을 밝히고 사랑의 불을 밝혀야 할 때다. 세상은 추위로 얼어붙지만, 우리 마음은 얼지 않게 따뜻이 주님을 감싸는 우리였으면 한다. 신앙의 빛을 따라 주님의 사랑을 살아내는 우리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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