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2일 연중 제 3 주일 복음 묵상
우리는 빛을 성탄시기 내내 그리고 지난 주일까지 듣고 빛의 의미를 묵상하였다. 빛은 생명, 행복, 구원, 기쁨 들의 의미로 빛이 없는 곳이란 생명도 안전도 성장의 가능성도 없다. 그러기에 어둠은 죽음과 같은 의미이다. 그래서 1 독서의 캄캄한 땅(9,1)이라는 대목은 죽음의 그늘진 땅(마태 4,16)이 된다. 하느님은 생명과 구원의 원천이시기에 그분은 빛에 싸여 계신 분, 빛 가운데 계신 분(1디모 6,16)이시고 빛 자체 이신 분이시다.
예수님의 공생활은 갈릴래아를 중심으로 시작된다. 갈릴래아는 정치와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달리 이방인들이 많고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변방도시다. "옛날에는 즈불룬과 납탈리 땅이 천대를 받았으나 앞으로는 … 영화롭게 되리이다"(이사 8,23). 이처럼 제1독서에서는 예수님께서 활동하신 지역이 이미 구약 예언자의 입을 통해 예언된 곳임을 밝힌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마태 4,16)고 한다. 이지역이 이방인들이 사는 곳임에도 여기에 큰 빛이 비친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유대인들 만을 위한 구세주가 아니라, 온 세상의 구원자시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빛이시다. 그분의 말씀, 가르침, 치유, 활동 그리고 그분의 현존 자체가 빛이시다. 스스로 빛 안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빛으로 오신 구원자 예수님이 그다지 필요 없겠지만, 움치고 뛸 수 없을 만큼 복잡한 덫에 걸려 앞뒤 좌우 캄캄한 구렁에 갇혀 본 이들에게는 너무도 절실한 이름이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그분을 따라 나선 어부들 역시 빛이 절실한 이들이었기에 그들은 보잘것없는 자기들을 불러준 빛에 자석처럼 끌리게 된다.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백성 가운데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4,23) 이제 갈릴래아 사람들도 그 빛을 본다. 어둡고 약하고 슬픈 이들이 먼저 그분을 체험한다. 그분이 몰고 온 밝음과 따뜻함, 위로와 치유가 곧 하늘나라의 복음이다. 하늘나라는 이미 그리스도의 전도를 통하여 실현되고 있고 또 그분을 통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하느님의 왕권을 뜻한다. 그런데 이 하늘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 생성되고 활동하고 있으며 종말의 상황에서 완성되게 될 것이다.
이제 하느님의 나라가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 완성되어야 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마음과 정신과 생활습관의 깊은 변화를 촉구하신다. 회개하라는 말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의 방향전환을 뜻한다.
그리스도의 메시지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의 선포이고, 회개는 거기에 들어가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즉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멀리 있다.
이스라엘의 스승들은 그들을 따르던 제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자들이 스승을 선택하여 따르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제자들을 선택하신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그분의 인격을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제자들과 공동생활을 하시며 그들의 벗(요한 15,15)이 되신다. 마지막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그분의 여정을 다시 밟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첫 번째 제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선뜻 용기 있게 응답한 자체가 그들 마음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 자신들을 온전히 의탁하기까지 점진적 과정이 있었다. 맨 먼저 그물을 버리고, 그 다음에 배를 버리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버지 까지도 떠난다. 즉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과의 결별이며, 더 나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결별이기도 하다. 자기를 버리는 일은 우리의 존재 전체가 회개를 통하여 다른 존재가 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제자들의 이 부르심의 깊은 의미는 바로 모든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자신들을 그리스도의 빛에 내맡기며 그분을 따르기 위해 삶의 방향을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모범이 되고 있다.
오늘의 제2독서에서도 회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분열로 흔들리는 코린토 신자들의 중심을 잡아 준다.
"바오로가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기라도 하였습니까?"(1코린 1,13) 당시 예수님을 직접 체험하지 못한 이방지역의 신자들은 베드로나 바오로, 아폴로 등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서 나름의 빛을 보았을 것이다. 엄밀히 말해 그 빛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빛이신 예수님을 반사하는 빛이었지만,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는 혼란의 여지가 되기도 했을 것이다. 바오로는 그런 혼란을 틈타 자신을 높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이 우리의 중심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빛은 세상 어느 곳에나 골고루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그 빛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더 가치가 있다. 살다 보면 영혼에 어둠이 몰려와 불이 꺼진 듯 빛이 희미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빛의 부재를 처절하게 체험한 이들이 빛이 그립기에 빛을 찾는 법이다. 따라서 삶의 어두움은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다가서는 지름길일 수도 있다. 주님을 향하는 영혼에게는 주님의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 빛은 원죄와 더불어 부끄러움을 안고 사는 우리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실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온종일 태양을 따라가는 해바라기처럼 온 힘을 다해 빛을 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