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연중 제 11 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신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 축일은 예수님의 성심을 사랑과 은총의 샘으로 생각하여 십자가상에서 군인의 창에 찔리어 예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나온 것을 (요한 19,34) 천상의 보물창고에서 무수한 은혜가 쏟아져 나온 것에 비유 한다. 즉 심장에서 흘러내린 물은 영혼을 깨끗이 씻고 초자연적 생명을 부여하는 성세성사를 상징하며 피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하는 영혼의 양식인 성체성사를 상징하는 것이다. 마치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나왔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13세기 이래 독일의 신비주의에 영향을 받아 성심 공경이 시작되면서 점차 부흥하게 된다. 예수성심은 하느님이면서 사람이신 주님의 사랑과 정서, 감정의 중추이며 인간에게 베푸신 하느님 은총의 근원이며 사랑의 표현이다. 또한 동시에 인간 사랑의 응답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가 예수 성심 축일을 성체와 성혈 대축일 과 밀접하게 연관되었기에 성체와 성혈 대 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키도록 한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13세기 이래 예수성심의 공경이 성하였지만,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대 축일로 지내오고 있다. 이날은 또한 사제성화의 날로 정하여 사제들이 사랑의 덕에 이르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오늘 복음에서 안다는 사람들과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율법을 잘 알고 잘 지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며 철부지 어린아이들은 율법을 알지도 못하고 지키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철부지 어린아이들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이다. 이런 어린아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며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하느님 앞에 가장 아버지의 뜻을 잘 따른 어린이는 바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하신다. 온유한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이 없는 부드러운 마음이다. 또한 겸손은 한없이 낮아지는 것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시면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심을 배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셨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신다면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우리의 일상 안에서 ‘예수님 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물어 주님의 마음을 배워가는 우리였으면 한다.
노자는 “알면서도 모르는 게 으뜸이요, 모르면서 아는 게 병”이라 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당시에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배척을 당하셨다. 잘나고 똑똑한 사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가 아는 것이 최고였기 때문에 주님의 가르침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철부지들, 그야말로 촌놈들이나 상것들, 별 볼일 없는 못난이들은 주님의 가르침이 필요했기에 받아들여진다. 그들에게는 겸손과 단순함이 있었고 그것이 사실 세상의 희망이었다. 잘난 사람은 남을 등쳐먹으려 애를 쓰고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서로를 헐뜯고 깎아 내리지만 때 묻지 않은 철부지들은 새로운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머리로 계산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단순한 사람을 더 사랑하신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것이 우리의 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을 뜻하지 않는다.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을 가리키며 친숙해 지는 것이기에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며, 결국 알기 때문에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또한 남녀가 결혼을 통해 가장 깊이 만나는 것을 ‘안다’라는 말로 표현하듯이 하느님께서 인간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당신의 사랑으로 충만이 채워 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안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예수님은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고 하셨고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예수님과 하느님과의 긴밀한 관계를 알려주셨다.
이제 그 아버지에 관해서 아들인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고 그분이 알려준 아버지를 세상에 알려야 한다. 그분을 알리기 위해서 그분을 알아야 하는데 그 첫 자세가 “어린이와 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철부지 어린이는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온전히 부모에게 의존하며 따지지 않고 부모를 따른다. 그것이 겸손이다. 단순하면 할수록 하느님의 뜻을 더욱 잘 깨닫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예수님을 따르는 철부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당신을 계시해 주셨다. 바로 예수님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 안에서 위안과 안식을 찾고 또 누릴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의 법을 우리가 실천 할수록 큰 기쁨과 위안을 누릴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하는 우리였으면 한다.
마음이 어질고 겸손하신 예수님, 저희 마음을 주님 마음과 같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