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0일 연중 제 13주일
복음서에는 기적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복음서는 2000년 전 팔레스티나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지 현재를 사는 우리를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따라서 복음서가 전하는 이야기들 안에는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는 해석과 그들이 가진 편견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시대 사람들에게 기적은 자연법과 관계없이 하느님이 하신 놀랍고 은혜로운 일을 기적으로 생각했다. 세상은 하느님이 주신 놀랍고 은혜로운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세상이 있다는 사실도 기적이었고, 아침에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도 기적이고, 사람이 살아 있는 것도 그들에게는 기적이었다.
현대 과학은 대자연의 신비를 하나씩 벗겨내고 있다. 또 우주 공간을 정복하여 우주에 관한 많은 정보를 준다. 인간 유전자를 해독하여 사람의 성격과 장차 발생할 병까지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는 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는 알 수 없어 신비라고 생각하던 것들을 오늘날 현대 과학은 풀어헤치고 있다. 신비스러운 것이 없어진 오늘이다. 과학은 지금 이해할 수 없다고 그것을 신비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현재 그것을 모를 뿐이지, 장차 그것을 이해하고 설명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성서가 기적 이야기들을 전하는 것은 하느님이 하신 놀랍고 은혜로운 일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다. 현대인은 이야기를 들으면, 그것이 먼저 사실인지를 묻지만, 성서가 기록될 당시의 사람들은 이야기의 사실 여부 보다는 그 이야기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성서에는 역사적 사실도 기록되어 있지만, 그 시대 신앙인들이 체험한 바도 수록되어 있다. 그것을 읽는 신앙인도 같은 체험을 하라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회당장에게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 하시며 죽은 듯이 잠자던 소녀에게 "탈리타 쿰!"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하시며 아이를 일으켜 세우신다. 또한 12년간 하혈하던 여인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며 고쳐 주신다. 치유를 받은 12살 먹은 야이로의 딸과 12년간 하혈한 여인은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인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느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질서는 오묘하다. 대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동·식물과 더불어 어울려 살아간다. 그런데 이세상은 천재보다 인재가 더 많이 발생하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 중심의 삶을 무시하며 인간중심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무분별한 개발로 생태계를 파괴함으로 자연에서 멀어진 인류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잊었고 그 대가로 이름 모를 병으로 죽어가고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대재앙을 두려워 한다. 지금도 지구 온난화 현상이 현실화 되면서 빠른 속도로 빙하가 녹아내리고 있으며 작은 섬나라들은 물에 잠길까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다.
대자연과의 조화, 생명 있는 것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기본질서이지만 자연을 싸워 이길 대상으로 생각하며 정복하려 들고 발전을 명목으로 무분별한 개발의 상처는 심각 해져 자연의 기본질서는 무너졌고 무너짐에 힘들어하는 자연의 몸부림으로 힘들어 지는 무리는 함께 하지 못하는 인간들이다.
가정의 문제도 심각하다. 노인의 문제, 이혼, 낙태, 이기주의에 의한 가정파괴…….. 더불어 살지 못하는 탐욕과 이기주의 그리고 정복의 대상이 되어 버린 우리의 이웃은 이제는 사랑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뛰어 넘어 정복해야 산다는 경쟁만을 키워가고 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머무는 곳에서 먼저 탈리타 꿈을 외쳐야 한다고,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서도 탈리타 꿈을 외침으로 우리의 지나친 편리함 때문에 고통 받는 이웃과 자연과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외치는 듯하다. 사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또한 사랑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신앙인의 의무다. 우리는 사랑으로써 신앙인의 정체성을 확신하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갖게 된다. 하느님을 믿는 이 공동체가 가슴 따뜻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랑의 공동체이기를 기도하며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움직이는 믿음의 길로 나서야 한다.
사막의 성자 샤를르 드 푸고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닮게 됩니다.” 우리의 실천하는 사랑의 모습에서 탈리타 꿈을 외치신 그분을 뵙게 해야 한다. 아니 우리 자신에게 먼저 '탈리타 꿈!'을 외쳐야 한다. 탈리타 꿈! 일어서라! 그리고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