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7일 연중 제 14 주일 Fr. 김두진(바오로) 강론

 

7 7일 연중 제 14 주일

내가 시카고에 온 지가 삼십 년이 넘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 중에 벌써 그 만한 또래의 자녀들을 가진 이들도 있고 팔팔한 젊음을 자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이를 먹어 노인의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 때가 좋았는데 안타까운 회상과 점점 늙어간다는 현실이 조금은 서글프다. 헌데 어제 차를 타고 오다가 라디오에서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노래를 듣고 화들짝 놀랬다. 집에 오자마자 검색을 해 보니 노 사연이란 가수가 노래 한바램이라는 노래였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다라는 표현이 곱씹을수록 가슴 시리게 희망차다. ‘밥이 익다’ ‘사과가 익었다’ ‘술이 익다처럼익다는 딱 먹기 좋을 때를 말한다. 인생도 산전수전 다 겪고 인생 참 맛을 알기 시작할 때가 나이 들어갈 때이지 않을까 싶다 보니 늙어가는 우리의 신앙도 익어가는 중이었으면 하는 희망이 생긴다.

오늘 복음에서 고향에 오신 예수님을 고향사람들은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소위 안다는 것 때문에 그 분의 참 모습을 보지 못한다. “저놈은 내가 어릴 때부터 봐왔던 아이야. 쟤 아비도 알고 어미도 알고 누이도 알고 형제도 아는데 저놈 말하는 것 봐라. 참 많이 컸네.”

성서를 통해서 본다면 예수님께서는 3년 가까이 공적으로 활동하셨다. 그 동안 딱 한번 나자렛 고향을 방문하셨는데 인정받기 보다는 불신을 당하시는 수모를 겪으셨다. 바리사이들과 헤로데의 당원들은 그분을 죽이기로 결정했고 친척들은 그분이 정신 나갔다고 했으며 백성 뿐 아니라 그분의 제자들도 그분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따뜻해야 할 고향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기 커녕 배척 한다.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예수님의 가르침과 지혜와 기적을 보고 놀라워하였지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분의 신적 권위와 지혜와 능력에 대해서는 알아보고 놀라워하였지만, 동시에 그분이 목수이고 마리아의 아들이고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안다는 것이 오히려 믿음의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 그들은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6,3).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말씀을 직역하면걸려 넘어졌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고향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6,5) 고향사람들이 그분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이 없는 곳엔 기적도 없다. 예수님을 놀라게 한 나자렛 사람들의 불신은(5,6) 지극히 인간적인 시각과 경험에 묶여 있다. 그들은 익숙함에 젖어 '지금 여기서' 드러나는 창조의 새로움을 만나지 못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으나 전혀 알지 못했고 예수님에 관해 자신들이 알고 있던 과거의 지식에 갇혀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들을 불신으로 내몬 것은 과거의 틀이었다.

행여 가까운 사람이나 함께 살고 있는 이를 존경하지 못하고 설상가상 못마땅하게 여기시는가? 행여 내가그 사람을 잘 안다는 생각에 빠져 살지는 않는가? 행여 있는 그대로의 그가 아닌내가 아는 그라는 선입감에 갇혀 살지는 않는가? 그것은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니다. ‘안다는 생각에 가려 진짜를 보지 못한 무지와 곡해와 왜곡과 몰이해일 뿐이다. 거기에는 질투와 시기, 비교와 경쟁, 이해타산의 이해관계와 계산이 있고, 신뢰가 아닌 의혹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우리는안다는 것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히려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모르는지 배워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신이안다는 생각, 그 우상을 벗어나야, 진정한 하느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갖고 있는 지식을 뛰어넘는 일이다. 곧 하느님을 내 지식 안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앎으로부터 해방시켜 드리는 것이며,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의 하느님을 없애 버리는 일이다.

나이를 먹으며 익어가는 중이라고 믿는 우리, 우리의 믿음은 자기 생각에 갇혀늙어 가는지하느님 안에서익어 가는지곱씹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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