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4일 대림 제 2 주일
12월이 되니 뭔가 조급한 생각이 든다. 교회력으로 이미 새로운 해를 맞이했지만, 올해가 이미 저무는데, 또 한 살을 더 먹어 가는데 나는 어떤 열매를 맺었는지, 어떤 나무가 심겨져 있는지 생각하게 되고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은 것 같지 않아 마음이 조급해 지는 모양이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고 바꿔야지, 회개 해야지 하다가 오늘 독서와 복음을 읽으며 가슴이 철렁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들려준다. 잘려 말라죽은 그루터기는 다윗 왕조의 죄와 불충을 상징하고 바로 이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는 것은 거저 주는 생명의 시작을 나타낸다. 영의 선물은 사람을 변화시키고 지혜와 용맹과 사랑의 영으로 채워 준다. 메시아께서는 주님의 영을 받아 무엇보다 힘없고 가련한 이들을 위하여 놀라운 구원의 활동을 펼치신다. 메시아의 나라에는 긴장과 적대 행위는 없고 평화와 일치가 가득하다. 이런 이사야의 환시는 우리를 희망과 기쁨으로 채워 준다. 메시아의 도래와 메시아가 인간들 가운데 성취 시킬 변화의 놀라운 위업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정의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것이고, 모든 피조물들 사이에 평화를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같이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시적 표현을 통해 인간들 사이에 모든 피조물들 사이에 쇄신과 평화의 시대가 이루어질 것을 예고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니, 결국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바꾸어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역사를 이끌어 가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다.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성서를 증거로 내세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을 화해시켰는지
상기시키면서 이 어리석은 인간의 역사가 그 의미를 되찾고 사랑의 역사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는 다시 오셔야 한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모든 사람들 모두 한 마음이 되어 한 목소리로 예수님을 주님이요 우리를 구원하러 사람이 되어 오신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인식하게 될 때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사제들이 하는 농담 중에 강론과 고해성사만 없다면 사제는 해 볼만한 직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신자들을 신앙적으로 가르치거나 회개시키는 것이 매우 힘들고 어렵기에 나온 말이다. 그런데 사제로 살다 보니 정말 어려운 것은 정작 남의 강론을 듣는 것과 자기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니 강론 시간에 잠을 자는 신자들의 마음도 이해는 된다. 특히 신자들의 죄를 사해 주는 처지에서 자신도 매번 죄를 찾아 회개하고 고해성사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가 않다. 그것은 자신이 열심히 산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스스로 만든 자신만의 견고한 성안에서 스스로 굳어졌지 때문일 것이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도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기 위해 오기는 했지만, 그들은 직업상 율법을 통해 남들의 죄를 판단하고 단죄를 하는 사람들로서 행여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요한 세례자는 이들을 보자마자 대뜸 독사의 족속이라고 비난하면서 화를 피하려면 “우선 회개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한다. 이 말에 그들 대부분이 이미 율법대로 잘살고 있는데 뭘 회개하라는 것인지 서로 묻기도 하고 일부는 당혹해 하며 그 자리를 떠나버리고 만다.
우리는 대체로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보다 더 옳고 바르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신앙생활에 매진하여 깊이 의식화되고 습관이 된 신자일수록 회개가 힘들다. 그리고 세상의 죄악들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들이 문제이지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것이 ‘지적질’이고 제일 어려운 것이 ‘회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신자들도 회개를 소홀히 한다. 우선 죄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끝없는 변명으로 자신의 죄를 합리화 시키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회개에 따르는 그 은총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믿음생활에서 회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첫 설교 말씀이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고 하신 것을 보면 회개는 하느님 나라의 입구라 할 수 있다. 아무리 기도와 선행과 자선 등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가 먼저 이루어 지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단순한 종교적 행위에 불과할 것이다.
죄는 시간이 가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전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 해결법은 오직 회개 뿐이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1요한 1,8-9) 그리고 덤으로 회복의 은총도 주어진다. “내 이름으로 불리는 내 백성이 자신들을 낮추고 기도하며 나를 찾고 악한 길에서 돌아서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들의 땅을 회복시켜 주겠다.”(2역대 7,14)는 말씀은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진정한 회개로 돌아오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자동으로 복구되고 회복됨의 보증이기에 이것만큼 큰 은총은 없을 것이다.
대림 시기 동안 우리는 우선 회개로 시작하여 완고해진 우리의 마음을 비워 놓고 주님을 맞이하면 좋겠다. 회개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매 순간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곧게 하고 그분의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우리였으면 한다. 세례자 요한이 오늘 이렇게 외치고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