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5일 연중 제 12 주일 김두진(바오로)신부님 강론

 

 

6 25일 연중 제 12 주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지만, 두렵다사는 것이 겁나고 미래는 막연하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쓰러지는 사람들을 보고, 예기치 않은 일에 휘 말려들어 불행하게 되는 이야기도 듣는다. 그런 일이 내게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사는데 두려움이 있다.

 

“너희들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마라.(26) 예수님은 두려움에서 벗어나시라 하신다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도 모른다그러나 두려움을 떨쳐버리라 하신다사람들은 자기가 고립되어 있다고 느낄 때 두려워진다혼자 있다는 것은 늘 두렵다외로움을 넘어 두려움이 찾아오는 이유는 우리는 혼자서 살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두려움을 없애려면 더불어 살아가야 할 텐데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권력과 힘을 사용하고지위나 재물로 두려움을 감추니 세상이 혼잡 해진다두려움 때문에 화를 내고남에게 냉소적이며용기가 아닌 만용을 부리게 되니스스로를 가두어 자폐의 삶을 살게 된다결국 외로움은 두려움으로 또 두려움은 자기 폐쇄로 치 달아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한다그렇다고 두려워 겁내고 벌벌 떤다고 운명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고통은 없애 주고 불행은 오지 않게 하소서. 하는 기도는 어린 아이의 기도다고통과 불행을 없애 주기보다는 극복할 힘을 주십사고 청해야 한다어차피 내 몫으로 주어진 십자가다그분께서 힘을 주셔야 고통을 껴안을 수 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과 축복이 있음을 알게 될 때 두려움은 더 이상 무서움이 아니다.

 

또 다른 이유로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지나친 걱정 이다이렇게 되지 않으면 어쩌지혹시 저렇게 되면 어쩌지하는 지나친 걱정은 사람들을 두려움으로 몰아간다그러나 사실 문제의 해결은 두려움이 아니다. 오히려 방해가 된다. 오래 전에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본 글귀가 생각난다. "사람이 걱정하는 일들 중 80 퍼센트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너무 자주 또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고 살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자.

 

이어서 나오는 말씀은 세상에 비밀이 없듯 지금 숨겨진 일이 장차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며 어록에 수록된 말씀이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뜻은 문맥상 27절과 연계해 알아들을 수 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27) 예수님은 아직도 기쁜 소식을 접하지 못한 이 세대 사람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시며 그들 안에 당신 나라를 펴라고 하신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에게서 은밀하게 익히게 되는 것을 나중에 공공연하게 선포하라는 말씀이다

 

 

이 은밀한 배움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 뿐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예수님의 사랑의 행위들을 보고 배워 그대로 실천하라는 말씀이다그러나 복음의 삶에는 어려움이 뒤따를 것이고, 박해가 뒤 따를 것이니 그렇게 되더라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 시는 말씀이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0)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돌보시며 아끼시는데 두려움을 가질 이유가 없기에 주님이 이르신 말씀이라면 놓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떳떳이 외칠 수 있어야 한다. (10,27). 세상에 살면서 비록 가난에 쪼들리고 비천한 신분 속에 산다 해도 하느님을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것이며하느님 이름 때문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갖은 모욕과 수모를 받을지라도 이를 기쁘게 감수해야 한다여러 모양의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하느님께 향하는 열정으로 사람들 앞에서 하느님을 용감히 증언해 보일 각오가 있어야 한다. (10,39).

 

이제 예수님은 마지막 날 심판 때 당신 아버지 앞에서 또 만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를 뽑아 당신이 잘 아는 벗들이라 부르시며 영원한 축복의 나라로 인도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10,32).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이 세상에서 나의 개인 사정만을 앞세우고 일단 눈에 보이는 것에 욕심이 나 스스로를 속일 뿐 아니라 어떤 때는 하느님을 믿는 것까지 감춤으로 오히려 사람들 앞에서 수시로 하느님의 이름을 외면하고 살지는 않는지 반성해야 한다."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10,33).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게 주님과 복음을 위한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이를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촉구하신다한 닢에 팔려가는 참새 보다, 아니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아버지의 마름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얼마나 사랑받고 사는지, 사랑 받은 우리가 어떻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놓으신 아버지참 기쁨의 삶으로 초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되어야 함은 우리 신앙인으로서 가져야 할 본분이다.

 

하느님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이 아닌 모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 이외의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두려움은 하느님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므로 복음을 전함에 있어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해서 우리는 늘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권고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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