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요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주님

 

 

 

 

 

길이요 진리이시며 생명이신 주님

 

 

 

제가 건강할 때는 걷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많이 걷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2-3마일을 걸을 요량으로 운동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리가 편치 않아 걸으려 하면 겁부터 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걷습니까?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고 어느 가수가 노래했지만 인생을 살면서 걷게 되는 많은 길 중에서 가고 싶은 길, 가야할 길, 가고 있는 길이 있을 겁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안에서 우리는 어떤 길을 가고 있나요?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을 떠나실 때가 된 것을 아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당신의 사랑을 보이십니다. 그러시면서 불안에 떠는 제자들에게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14, 1)며 당부하십니다. 믿음만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굳건한 신뢰와 내적 평화를 줄 수 있으며, 부활하여 오실 예수님을 알아 뵐 수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집에 거처할 곳이 많다 …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 같이 있게 하겠다.” 는 약속으로 새로운 길을 말씀하십니다.(2–3) “너희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알고 있다.”(4)고 확신하시는 예수님께 고맙게도 토마스는 “저희는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5)라며 우리를 대신해서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6)고 당신 자신을 알려주십니다. 우리가 길을 알 때 목적지를 쉽게 찾을 수 있으며 길의 끝이 어디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신앙의 유일한 Navigation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라시며 “이제부터 그분을 아는 것이며 이미 그분을 뵌 것”(7) 이라 하십니다.

 

진리

요즈음 뉴스를 보다가 이것이 진짜일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Fake News라는 말을 유행시킨 대통령이 있을 만큼, 발달된 통신으로 인터넷 세상에는 가짜뉴스가 많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간 조심하지 않으면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늘 아버지를 알고 싶어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제자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본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안다’는 것은 온전한 만남을 뜻합니다.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 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하느님과 온전한 일치와 친교를 이루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10) 또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11)이라고 하심으로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하느님을 담고 계심을 나타냅니다. 계시란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는 계시종교 입니다. 즉 사람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 즉 하느님이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인도해주시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가톨릭교회의 창시자는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나라를 가르쳐 줄 수 있고 설명할 수 있고 인도해줄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따라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신 뜻은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걸어야할 길이고, 알아야할 진리이며 살아야할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께 갈 수 있는 길이기에 그분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는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불행이지만 우리를 위해서는 다행으로 여겨질 만큼 제자들이 가지고 있던 예수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이해와 믿음은 많이 부족하고 또 심각했습니다. 이미 아버지를 뵈었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생뚱맞게 필립보는 묻습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주십시오." 답답하셨겠지만 예수님은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9절) 하시며 믿음을 촉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10절),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11절; 5, 36 참조)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을 굳건한 믿음으로 확고하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믿음만이 예수님 안에서 길과 진리 그리고 생명을 볼 수 있게 하며, 길의 목적지인 ‘아버지’ 와 ‘아버지의 집’ 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14, 2. 8)

 

생명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은 소중합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이런 진리를 알게 되면 생명을 소중하게 대하게 됩니다.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진리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는 생명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진리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는 분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일”은(11) 생명을 주는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는 표징이며, 아버지께 가는 예수님을 대신하여 제자들 안에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더 큰 일’ 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현존 안에서 제자들과 그들의 공동체가 맺어갈 믿음의 열매이며(제1 독서 참조)그 일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의미에서 더 큰 일이 됩니다. 이런 확신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며 활동하신다는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14, 3; 마태 28, 20 참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더라.”는 조선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 선비의 말은 신앙인인 우리가 하느님과 만나는 과정을 알려주는 듯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 토록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음에도 그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과 성령강림을 체험한 후에 그분께 대한 신앙과 사랑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의 의미를 깨닫고 그분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한결같이 예수님이 세상의 주님이며 구원자심을 죽기까지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은 어디로 향해있으며, 가야 할 길의 사명은 어디에 있는지…… 이 물음에 이어 지금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길은 어떤 길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며 우리 신앙의 여정을 되돌아봐야 합니다. 주님께 우리는 무어라 답할 수 있을지 묻고, 또 물으며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분께로 나아갑시다.

 

                                                                                                                                                                                            – 김 두진(바오로)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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