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성월에 어머니날을 맞으며
가장 아름다운 계절 5월은 성모님의 달입니다. 신앙의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기리며 그분과 더욱 자주 기도하자는 성모성월에
어머니날을 맞았습니다. 제가 늘 '엄마'라고 부르던 그분은 이제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어머니는 늘 우리에게 사랑의 존재입니다.
늦었지만, 어머니날을 맞이해서 모든 어머니께 사랑의 노래 하나를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Love is real, real is love,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Love is wanting to be loved. (John Lennon의 Love -사랑은 참이며, 사랑은 느끼는 것이고 사랑은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당신들의 자녀들을 사랑해 주시고 그 사랑을 위해 일생을 살아오신 어머니 감사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처럼 하늘나라로 떠나실 예수님의 고별담화를 듣습니다. 지난주일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별을 알리고 믿음을 촉구했다면, 오늘 말씀은 보호자의 파견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사랑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15)이라 하시며,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21절) 이 될 것이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인 사랑은 그저 지켜야할 계율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어 기쁨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사랑은 어느 가수가 노래한 것처럼 눈물의 씨앗일 뿐일까요? 오히려 사랑하기에 힘듦과 어려움을 기쁨으로 승화 할 수는 없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는 제자들을 위하여 “다른 보호자”, 곧 “진리의 영” 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16. 17절) 협조자라는 이 표현은 그저 단순하게 떠나시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격려하시려는 말이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을 강화시키고 임무수행 즉 사랑의 삶을 도우시기 위해 파견 되어지는 협조자 이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 가시므로 천상에서 제자들의 활동을 도와주는 보호자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1요한 2, 1 참조) 다른 보호자는 제자들과 “영원히 함께” (요한 14, 16) 머무시며, 진리를 증언할 뿐 아니라 제자들을 진리로 이끌어주실 성령을 말씀하십니다. (16, 13; 1요한 5, 6 참조) 성경에서 ‘진리’ 는 계시의 총체적 개념이지만, 요한복음서에서는 예수님 자신을 나타냅니다. (요한 14, 6) 따라서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진리의 영 안에 함께 계시며 성령을 통해 활동하실 뿐 아니라 제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시며 이끌어 주시는 분이이십니다.
“세상” 과 “제자들” 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서로 분리됩니다. (17) 믿음이 없는 “세상은 성령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제자들은 성령을 “알고” 받아들여 “함께” 생활함으로써(17) 성령은 제자들 안에서 그들의 내적인 힘과 역동성을 부여합니다. 또한 성령에 힘입은 그들은 제자로서 자신의 신원을 명백히 깨닫게 됩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18)는 예수님의 약속은 사랑의 표현이며 “이제 조금만 있으면” 죽음
을 이기시고 “그날” (20)에 있을 다시 오심의 약속입니다.
믿음은 어둠과 빛을 갈라놓듯이 세상과 제자들을 분리시킵니다. 믿음이 없는 세상이 어둠의 터널로 들어갈 때 믿는 이들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불신으로 더 이상 그분을 “보지 못하겠지만”, 제자들은 부활하시어 하느님의 새 생명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19)
그때에 제자들의 나약했던 믿음은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채워져 굳건하게 되며 (7–11절 참조), 하느님 영광에 참여한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영광 안에서 이루신 일치를, 이제는 부활한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루게 됩니다. (20– 21)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그리고 ‘그들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시는 일치의 충만함을 누리며, 계명을 지키는 사랑의 삶을 이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모든 믿는 이들은 오늘 제2독서의 말씀처럼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거룩히 모시고 생활하는 희망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1베드 3, 15)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제자들의 사랑은 예수님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 과 연계를 이루며 부활한 주님을 알아 뵙는 근간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 20, 18; 21, 7 참조)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16절),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8절) 는 예수님의 약속이 가지는 의미는 새로운 계명을 생활하라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소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뵙고,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17ㄴ절) 세상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주고 보여주는 삶으로 그리스도의 은총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이것이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마태 28,19–20) 명령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응답입니다. (2코린 5, 14)
사랑, 사랑, 사랑, 말로는 쉬운데 실천하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이 말씀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는 단어가 사랑일 것입니다. 이 사랑에는 한 가지 법칙이 있는데 그것은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존 레넌의 노래 가사를 다시 옮깁니다. Love is living, Living is love. Love is needing to be loved. (사랑은 살아가는 것이고 사랑은 사랑 받기는 원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삶으로 살아가는 분이 누구입니까? 오늘 어머니날을 기념하면서 엄마의 얼굴이 새록새록 마음에 새겨짐은 그분의 사랑을 이제야 알 수 있어서가 아닐까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있을 때 잘하지' 하는 말씀이 오늘처럼 깊게 후회되는 날도 없지 싶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분의 사랑 방식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며 “내 계명을 받아 지키는 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랑을 살아가셨던 제 엄마가 겹쳐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김 두진(바오로)신부 –